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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기의 미소/사는 이야기

어느 직장인의 친구 이야기

- 좋은 일이 오면 나쁜 일이 오듯이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나의 친한 친구 중 한명은 어릴 때 무척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70년대에 초중고를 다닌 세대들 대부분이 가난했지만 그 친구는 특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지근거리에서 그 친구의 삶을 지켜보고 있으며 지금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오늘 그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 친구와 함께 자란 강원도 두메산골 탄광촌

  내가 자란 곳은 강원도 두메산골 어느 탄광촌이다. 전성기 때 그곳은 인구가 7천명이 넘어 읍소재지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폐광이 되어 2천여명의 주민들이 남아있다. 광산경기가 좋을 때 흥청거리던 거리는 온데간데없고 적막감만 흐르는 빈 공간만이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폐광지역 활성화 대책에 일부 기대를 걸고 있지만 특별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나와 내 친구가 사는 동네는 광산에서 50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같은 또래의 친구들도 몇 명 더 있었다. 친구들 중에는 함께 고등학교까지 다닌 친구들도 있고 향학열에 불탄 부모님 덕분에 일찍 그곳을 떠난 친구들도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그곳은 무척이나 추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겨울이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군불을 때야만 했다. 출입문과 창문은 물론 흙벽까지 성애가 끼었다. 여름에는 시원해 모기가 없었다. 70년대의 그곳은 지금의 북한지역 지방이나 중국 연변지역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2. 친구와 함께한 초등학교 시절

  내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 부터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만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초등학교시절 부모님들의 직업이 대부분은 광부였고 그 고장에서 광부들은 그래도 잘 사는 편에 속했다. 나 역시 부모님은 광부였으며 자랄 때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내 친구의 아버지는 광업에 종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친구는 옷도 변변히 입지 못해 늘 초라한 모습이었다. 내 친구는 초등학교 내내 누더기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닌 것으로 기억난다.

  집이 가난해서 그런지 내 친구의 성격은 내성적이었다. 누가 먼저 묻기 전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년이 바뀌어 반편성이 새롭게 되면 담임선생님은 물론 친구들과 가까워지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한다는 점이었다. 늘 나와 같이 다니며 거의 똑 같이 놀기만 하는데 성적은 늘 상위수준이었으며 5학년 때는 학교 배구선수로 뽑혀 6학년 때 군()단위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미술시간이었는데 내 친구는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준비하지 못한 잘못으로 교단 앞으로 나가 미술시간이 끝날 때까지 양손으로 의자를 들고 서있는 벌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친구에게 왜 미술준비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내 친구는 미술준비를 하려면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하는 것보다 벌을 받는 것이 편하다는 말과 함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로 기억난다. 그때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달에 500원 정도의 기성회비를 받았다. 담임선생님들은 맡은 반의 기성회비 납부실적으로 평가를 받기도 해 독촉이 심했다. 특히 한학기가 끝날 때가 되면 독촉의 횟수가 늘고 강도도 높았다. 4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5학년 올라갈 때쯤 기성회비를 내지 못한 친구들이 교단으로 불려 나갔다. 불려나간 친구들 중에는 내 친구도 끼여 있었다. 인자하시기만 했던 담임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며 교단 앞으로 불려나온 친구들에게 밀린 기성회비를 가지고 오라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간 친구들 중 대부분은 미납한 기성회비를 가지고 왔지만 내 친구는 빈손으로 울어서 눈이 부운 얼굴로 되돌아 왔다. 선생님께 돈이 없다는 말씀을 전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날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친구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기성회비를 가지려 집에 갔다가 어머니로부터 꾸중만 듣고 울면서 학교로 되돌아 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막 올라가서 얼마 되지 않아 어린이 회장 선거가 있었다. 6학년 5반까지 있었는데 각 반에서 1명씩 추천되어 5명의 입후보자가 나왔다. 내 친구도 그중 한명이었다. 내 친구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남루한 옷을 입고 기성회비도 잘 내지 못하며 학교에 다녔지만 공부와 운동을 잘해 동급생들은 물론 하급생들에게 많이 알려진 편이었다. 4학년 이상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고 유권자수는 1,500명 정도 되었다. 4학년 이상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5명의 입후보자가 어린이 회장에 출마하게 된 동기 등을 발표한 후 바로 투표에 들어갔다. 개표 결과는 차점자인 여학생 입후보자와 근소한 차이로 내 친구가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내 친구는 내게 단상에 올라가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 차점자인 여학생 입후보자에게 여학생들의 표가 쏠린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초기였다. 군 소재지에서 초등학교 대항 배구시합이 열렸다. 내 친구는 방과 후에 배구 연습을 하느라 거의 한달 가까이 같이 다니지 못했다. 매일 아침 조회가 시작되기 전에 치러지는 배구선수들과 선생님들과의 시합은 정말 재미있었다. 거의 대부분 선생님들이 이기지만 어린나이의 초등학교 선수들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해 배구시합에서 우리학교는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 그 때 내 친구의 실망어린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중에 내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운동경기는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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