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약한 규제 예상해 매수세
당초 ‘위축’ 전망 뒤집고 이상 기류
강남권·마포·성동구 호가 상승 주도
매물 사라지고 분양시장도 뜨거워
“6000만원 더 올려주세요.”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복희 대표는 지난 주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달 초 둔촌주공 4단지 70㎡(이하 전용면적)를 8억1000만원에 내놨던 집주인이 가격을 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김 대표는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매도자가 호가(부르는 값)를 올리거나 물건을 거둬들이고 있다”며 “소형 평형은 매물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보름이 지났다. 주택시장 움직임이 예상과 다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 부동산 정책 기조가 ‘부양’보다는 ‘안정’에 맞춰져 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게 애초 전망이었다. 이런 예상이 빗나가는 조짐이다. 대선을 앞두고 숨죽였던 주택시장이 서울을 중심으로 들썩이고 있다. 아파트값이 오르고 신규 분양 단지에는 청약자가 몰린다. 이런 분위기는 먼저 통계로 확인된다. 25일 한국감정원 조사 결과 지난 22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이 전주보다 0.2% 상승, 대선 직전인 지난 8일(0.08%) 이후 2주 연속 오름폭이 커졌다. 11·3 부동산대책 발표 이전인 지난해 10월 17일(0.22%) 이후 주간 기준으로 상승률이 가장 높다. 이에 반해 경기도와 인천 아파트값은 각각 0.05%, 0.04% 올라 전주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대선 이후 서울만 눈에 띄게 시장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 국회 분원 이전 등 호재가 있는 세종이나 부산 등을 제외하곤 여전히 보합권에 머물렀다.
서울에선 재건축 추진 단지가 몰려 있는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과 마포·성동구 등이 오름세를 주도했다. 강남구 개포동 시영아파트 40㎡는 9억~9억2000만원으로 2주 새 5000만~6000만원 뛰었다. 같은 기간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59㎡도 최고 4000만원 올랐다. 거래도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들어 24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7568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315건으로, 4월(260.8건) 대비 거래량이 많다. 개포동 세방공인중개업소 전영준 대표는 “한 달에 2~3건 거래하는 게 보통인데 5월 들어선 7건을 계약했다”고 말했다. 분양시장 열기도 뜨겁다. 대선 이후 건설사들이 미뤘던 분양 물량을 쏟아내면서 청약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달 중순부터 다음 달까지 전국에서 10만여 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2만1000여 가구가 나온다. 상반기 분양 예정 물량(3만여 가구)의 70%가 한 달 반 동안 쏟아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분양 수요가 몰리고 있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1순위 청약을 받은 ‘보라매 SK뷰’는 527가구 모집에 1만4589명이 몰려 평균 27.7대 1, 최고 10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서울에서 분양한 민간아파트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대선 이후 예상과 달리 서울 주택시장이 활기를 띠는 이유는 뭘까.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데다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기조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피부로 느낄만한 구체적인 부동산 정책이 나오지 않자 수요자들이 매수에 나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내수가 침체한 상황에서 강도 높은 규제책을 내놓지 못할 것이란 기대 심리도 한몫한다.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인상이 대표적이다. 보유세를 올리면 세금 부담이 커져 부동산 거래가 감소하는 등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함 센터장은 “이미 각종 규제책이 시행 중인 데다 잘못 건드렸다간 내수 위축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새 정부가 강력하게 규제책을 밀어붙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권의 경우 내년부터 부활할 것으로 전망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분석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위원은 “환수제가 시행되면 공급(신규 분양)이 부족해져 오히려 집값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그 전에 매수에 나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시중 뭉칫돈이 갈 곳이 없다’는 분석도 여전하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절대적인 금리 수준이 높지 않아 은행보다는 시세차익이 기대되는 재건축 단지나 분양시장으로 돈이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는 7월 말 종료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조치의 연장 여부 등이 집값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 새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을 강화하고 가계대출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총량관리제’ 도입을 검토하는 것도 변수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콘텐츠본부장은 “당분간 지금의 분위기가 이어지겠지만, 정부가 대출 제한 등 규제책을 도입하면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며 “매수 타이밍을 늦추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2017년 5월 26일 중앙일보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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