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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류동천복원되면 서촌지역은 서울 최고의 관광명소로 탈바꿈할 전망 

  경복궁 북쪽 북촌지역의 한옥 값이 워낙 많이 오르면서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 한옥이 3.33천만 원을 호가하는데도 사겠다는 고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북촌 한옥이 대로변 상가 및 숙박 체험장 수요로 3.34천만 원에서1억 원까지 올라 투자 메리트가 떨어지자 인근 서촌지역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인근 중개업소들은 서촌지역이 한옥마을을 조성하기에 걸림돌이 많은 만큼 투자를 할 땐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귀띔하기도 한다.

1. 경복궁 서촌 한옥, 1년 사이에 3.3당 일천만 원 상승

 

  경복궁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이 북촌, 왼쪽 지역은 서촌으로 불린다. 그동안 서울의 대표적 한옥마을로 꼽혀온 북촌에 매물이 뜸해지면서 최근 서촌에는 매수 문의가 늘고 있다. 서촌 곳곳에선 카페와 공방을 신축하는 현장은 물론 한옥 증개축 공사장도 증가하고 있다.
 
  서촌지역 행복공인 조모 대표는 "작년부터 한옥의 특징을 살려 카페, 사무실,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려는 고객 문의가 늘었다""3.31,700만 원 하던 한옥 값이 1년 새 2,500~3,000만 원으로 뛰었다"고 하며, 샛별공인 윤모 대표는 "서촌에 한옥을 매물로 내놓은 집주인들은 3.34,000만 원 이상을 받길 원해 거래가 활발하지 않다""3,000만원대에 매물이 나오면 바로 계약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촌 인근에 한옥건축사무소를 갖고 있는 최모 씨는 "올 들어 한옥을 사들였거나 매수 예정이라며 증개축 및 리모델링을 문의하는 외지인이 월 평균 10건 정도"라고 말했다
.

2. 서울시, 경복궁 서촌 한옥마을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계획

 

  서울 한옥에 대한 관심이 서촌으로 이동한 것은 '북촌 학습효과'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 추운 데다 생활이 불편해 서민들이 사는 곳으로 여겨졌던 한옥은 북촌이 관광지화하면서 값이 올랐다. 북촌 한옥은 3.3당 최고 1억 원을 호가, 거래가 '올 스톱'된 상태.

  서촌은 서울시가 동네를 관통하던 옥류동천을 복원해 청계천과 연결할 계획
을 갖고 있는 데다, 북촌처럼 한옥마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수요가 많다. 서울시는 북촌과 서촌을 연결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3.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의 관광지화는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

  서촌을 북촌처럼 관광자원화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촌의 한옥은 600여 가구로 북촌의 1,400여 가구에 크게 못 미친다. 남아 있는 한옥도 규모가 작고 골목 안쪽에 들어서 있다. 여기에 옥류동천 복원에 따른 주민보상이 답보 상태여서 서울시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서촌 주민 강모씨는 "서촌 한옥은 북촌과는 달리 띄엄띄엄 있는 데다 최근 서양식으로 개조하고 기와만 얹은 곳이 많아 한옥마을 조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모 옥인1구역 재개발조합 이사는 "옥류동천 복원을 위한 서울시 예산이 부족해 개발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한국경제신문 ‘11.09.08 기사 일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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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엔별 2011.09.13 1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옥 사무실 너무 멋질 것 같습니다. ^^

  2. 핑구야 날자 2011.09.13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의 질을 더 따지는 세상이라 앞으로도 관심 받을듯해요

  3. +요롱이+ 2011.09.13 15: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네요..!! ㅎ
    잘 보구 갑니다..^^

  4. 철한자구/서해대교 2011.09.13 2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쪽 지역들도 한옥을 철거하고 현대식건물을 짓는 일이 얼마전까지 비일비재했다고 하는데, 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이제 앞으로 그런걱정은 안하고 잘 보존될 수 있겠군요!!

    좋은 하루 되세요^^

  5. 솜다리™ 2011.09.14 0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옥..그렇게 남아있으니.. 참 묘한 느낌이더라구요..^^

  6. 오르가논 2011.09.14 0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복궁 서촌 한옥마을 대단하군요^^
    역시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인가 봅니다~

  7. 바닐라로맨스 2011.09.14 0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 땅값 올랐다는 얘기만 들으면 배가 아프다는...ㅎㅎ

  8. 블랑블랑 2011.09.14 0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갑자기 저도 한옥 카페 같은 거 해보고 싶네요...;;;

    • 명태랑 짜오기 2011.09.14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복궁 서쪽의 서촌지역과 북쪽의 북촌지역에는 한옥 카페가 많이 있습니다.
      한번 둘러 보시고 생각해 보세요
      즐거운 시간되세요

  9. 머니야 머니야 2011.09.14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에..사무실도 전통가옥에 들어간 경우들이 있어서 몇번 가봤었는데..평단가 오를만 하더군요^^

  10. 해우기 2011.09.14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 뉴스에서 한옥형 아파트내부를 보고...참부러웠어요...
    좀 아파트가 넓어야 좋겠지만...

    보면서 참 저랬으면 ..했는데....

    갈수록 한옥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다지만....실거주지가 아닌 별장...재테크용이 되기도 한다니 좀 아쉽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한옥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11. Hansik's Drink 2011.09.14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ㅎㅎ 이런 분위기도 상당히 좋을것 같아요 ^^

    • 명태랑 짜오기 2011.09.14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울지역 대부분은 아파트이거나 빌라 등 콘크리트 일색입니다. 한옥이 거의 없지요...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12. 화들짝 2011.09.14 14: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빽빽한 아파트 보다 한옥이 많아진다는 점은 좋은데 벌써 그리 가격이 오르면... ㅠㅠ

  13. 소인배닷컴 2011.09.14 1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뜨헉... 정말 비싼 동네로군요.ㅠ ㅠ

  14. 생활의 달인 2011.09.15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새 한옥 열풍 장난아닙니다 ㄷㄷ

- 왕기가 서려있다는 인왕산 자락의 서촌지역!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경복궁 서쪽 마을을 일컫는 서촌(西村). 고관대작부터 중인, 아전까지 서로 다른 신분층이 모여 살던 인왕산 자락 동네다. 사대부 중심의 북촌, 중인 중심의 남촌과는 다른 독특한 생활문화를 형성한 서촌은 조선시대 경치, 문학, 그림 일번지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2010 생활문화자료조사집 서촌-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에서 소개한 서촌의 내력을 정리했다.

1. 인왕산 왕기설

  서촌은 오늘날의 사직동, 체부동, 필운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효자동, 신교동, 창성동, 통인동, 통의동, 청운동, 부암동 등에 해당한다. 서촌의 역사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시작된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은 백악이다. 백악의 우백호인 서쪽 인왕산은 높고 우람해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는 논의도 있었다.

  차천로(1556~1615)오산설림(五山說林)에서 무학이 점을 쳐서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다. 그러나 정도전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옛날부터 제왕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다스렸지, 동쪽을 향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무학이 지금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200년 뒤에 가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라고 적었다.

  전설처럼 민중 사이에 오래도록 전해온 인왕산 왕기설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퍼졌다. 광해군 대에 인왕산 기슭에 경희궁과 인경궁을 세운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실제로 이 부근에서 살았던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됐다.

  세종이나 영조의 탄생지도 서촌이다. 인왕산은 경치도 좋고 경복궁에서도 가까운 주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그런데 명승지임에 비해 이름난 정자는 많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임금이 사는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447420일 밤 안평대군(1418~53)이 복사꽃이 우거진 낙원에 다녀오는 꿈을 꾸고 화가 안견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안견이 사흘 만에 그려 바친 것이 일본 덴리대 소장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은 그림이 완성된 지 3년 뒤인 1450년 설날 몽유도원도라는 제첨(題簽)을 쓰고 시를 지었다.

  이듬해 꿈에서 본 무릉도원과 비슷한 풍경을 인왕산 기슭에서 발견해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었다.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 당대의 문인 학자들을 초청해 경치를 즐기며 시를 지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이 성공한 뒤 의정부에서 안평대군을 처형하자며 아뢴 죄목 중 첫 번째가 그 자리에 무계정사를 지었다는 점이었다. 인왕산이 왕기가 서린 곳인데, 장자가 아닌 왕자가 왕위에 오를 곳이라 왕권 탈취의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 외에도 김종서, 이개,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등 당대 최고 문신 21명이 친필로 글을 썼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자 이들의 운명은 둘로 갈라졌다. 신숙주, 정인지 등은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에 오르고, 안평대군과 김종서는 목숨을 잃었다.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은 3년 뒤 단종 복위운동을 계획하다 실패해 역적으로 처형당했다. 부암동에는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 있어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 터임을 나타내고 있다. 안평대군의 옛 살림집 근처에 있었던 기린교로 추정되는 돌다리가 지금은 철거된 옥인동 옥인아파트 9동 옆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문인화가 겸재 정선(1676~1759)18세기 조선의 독자적인 진경산수화풍을 창출한 인물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웃대(서촌)를 그린 그림은 60대 이후 체득한 완숙한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라 예술성이 뛰어나다. 인왕산 주봉 전체를 화폭에 옮긴 그림으로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강희언(1738~84 이전)인왕산도가 있다.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76세인 1751(영조 27)에 그린 노년기 역작이다. 사실적인 재현에 기초하면서도 내면의 심상을 투영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가령 백옥색을 띤 인왕산 바위는 검은 먹색으로 반전시켜 장중한 무게감을 줬다. 인왕산 기슭에 폭포를 두 군데 그린 것도 특징이다. 실제로 인왕산에는 멀리서 보일 정도의 폭포는 없다. 청풍계 계곡과 수성동 쪽으로 내려오는 두 개의 물줄기를 원경인 그림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강희언의 인왕산도는 객관적인 시각에 충실한 그림이다. 인왕산 골짜기를 자세히 파악해 가옥과 지형의 특징을 표현했고, 도성의 성벽과 능선도 빠뜨리지 않았다. 강희언은 특이하게도 여느 산수화에서는 여백으로 남겨두는 하늘을 수채화처럼 채색했다. 하늘의 기상을 관측하는 관상감 관원이었던 그는 하늘도 그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2. 정조대왕 국도팔영

  정조(1752~1800)는 서촌 지역에 자주 행차했다. 사당인 육상궁(증조모), 선희궁(할머니), 연우궁(할머니)을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참배를 마치면 선희궁 옆에 있던 세심대에서 신하들과 활쏘기를 했다. 세심대는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열양세시기“(세심대는) 꽃나무가 많아 봄의 꽃구경이 장관이다. 영조, 정조, 순조, 익종이 여기에 자주 거동하고 한 달 동안 사람들이 구름같이 구경했다고 적혀 있다.

  세심대는 원래 당진현감을 지낸 이정민(1556~1638)의 집터였으나 도성에서 경치 좋기로 유명해 광해군이 세심대를 취하고 대신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이정민은 이를 피해 홍주 봉서산으로 낙향했다고 한다. 정조는 세손 시절 국도팔영(國都八詠)’을 지었는데, 인왕산에 자주 오르던 때라 주변 명승을 많이 꼽았다. 8곳의 명승 중 필운대, 청풍계, 반송지, 세검정 등 인왕산 자락 서촌의 명승지 네 곳이 포함됐다.

3. 이상의 집, 윤동주의 하숙집

  20세기가 된 뒤에도 서촌은 예술의 중심지였다. 이중섭, 이상범, 박노수 등 당대 최고의 화가와 노천명, 윤동주, 이상 같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 이곳에 살았다. 이상(1910~37)3세 되던 1912년 형편이 넉넉하던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갔다.

 
이상은 백부의 집인 통인동 154번지에 23세까지 살았다. 짧았던 생애 대부분을 보낸 곳이지만 통인동이 작품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경성의 모던보이로 유곽이나 카페에 대한 글을 썼던 그에게 전형적인 주택가인 서촌이 작품에 들어올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상의 집은 백부가 세상을 떠난 1933년 팔린 뒤 헐려 자취가 없어졌다. 그러나 2007년 문화유산 보전 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사들여 이상 기념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윤동주(1917~45)가 서촌으로 이사온 까닭은 대동아전쟁이 시작되면서 연희전문학교 기숙사 식사가 부실해져서다. 그는 졸업반이던 19415월부터 9월까지 누상동 하숙집에 살면서 십자가’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등의 작품을 지었다. 윤동주의 하숙집은 10년 전 헐렸고 그 자리에 3층짜리 다가구주택이 들어서 있다.

4. 서촌의 문화재

  사적 제149호로 지정된 육상궁과 칠궁은 조선조 500여 년간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 7명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이다.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고종 19(1882) 불타버린 것을 이듬해 복구했다. 순종 1(1908) 이후 여러 곳에 분산돼 있던 여러 신위를 옮겨와 결국 칠궁이 됐다. 저경궁(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 신궁), 대빈궁(숙종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 신궁), 연호궁(영조 후궁이며 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 신궁), 선희궁(영조 후궁이며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 신궁), 경우궁(정조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 신궁), 덕안궁(고종 후궁이며 영친왕 생모인 순헌황귀비 신궁)이 모셔져 있다.

  등록문화재
93호인 배화여고 생활관은 당초 선교사를 위해 주택으로 지어졌다. 1915년 무렵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맨 아래층이 반지하로 되어 있어 현관으로 들어서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전체적인 외관은 서양식 붉은 벽돌벽과 서양식 기둥을 사용했지만, 한옥의 기와지붕을 올려 서양식과 한국식 건축이 섞여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문화재자료 9호로 지정된 백사(白沙) 이항복(1556~1618) 집터는 필운대(弼雲臺)’라는 바위 글씨로 남아 있다. 배화여자 중 고교 교사 별관 뒤편 높은 암벽의 왼쪽에 세로로 새겨진 글씨다. 이항복의 글씨라고도 하고, 그 후손인 이유원(1814~88)의 글씨라 전하기도 한다. 필운은 이항복의 호로 서산(西山), 즉 인왕산을 뜻한다.

  
그 밖에 동양화가 이상범 가옥(등록문화재 171), 박노수 가옥(문화재자료 1), 홍종문 가옥(서울시 민속자료 29), 해공 신익희 가옥(시도기념물 23) 등 문화재자료가 서촌에 남아 있다. 박노수 가옥의 경우 일제시대 대표적 친일파인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 한국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이 1930년대 후반 설계했다. 조선 말기 한옥 양식과 중국식, 서양식 수법이 섞여 있는 절충식 가옥이다.(대부분의 글은 서촌(서울역사박물관) 자료집에 실린 허경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의 논고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촌의 모습에서 발췌·요약했다. 인왕제색도 관련 글은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논고 한양 웃대의 명승 명소와 진경산수화에서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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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크야 2011.03.10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태랑 짜오기님 정성이 깃든 포스팅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2. 화들짝 2011.03.10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촌-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네요.^^

  3. hanshin 2011.04.12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촌'에 대해서 각별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네요.
    서촌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습니다.

    • 명태랑 짜오기 2011.04.13 0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촌에 비해 개발이 늦어지고 있지만 서촌은 아직까지 개발의 여지가 많습니다. 개발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기반시설이 어느정도 갖추어진다면 고층건물보다는 쾌적한 환경이 될 것 같습니다.

명태랑의 서촌지역 엿보기

1. 서울의 현재 모습 이대로 좋은가?

70년대 개발의 붐을 타고 들어서기 시작한 콘크리트더미의 여러 시설물들!

그중에서도 딱히 이것이다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거의 모두다 아파트를 찍을 것이다.

서울시내 곳곳이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음은 이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콘크리트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서울시내)

그런데 서울 대부분의 지역이 재개발 뉴타운 붐을 타고 아파트촌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경복궁 서쪽지역에 위치한 소위 서촌지역!

조선시대 화가, 장인, 상인 등 중인들이 주로 거주하였다는 서촌지역!

이지역도 한때는 재개발의 부푼 꿈에 젖어 주거환경 개선 등으로 부동산의 가치상승을 기대했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제 재개발의 부푼 꿈은 접은 것 같다. 몇 년 전 서울시에서 서촌지역을 몇 개의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해 놓고서 이제 와서 한옥 보존 등을 운운하며 설명회를 하고 최근에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서촌지역을 세종마을이라고 칭하고 한옥 보존과 골목길을 정비하여 경복궁과 연계한 관광벨트를 조성하는 쪽으로 개발의 방향을 정하고 추진하려는 것 같다.

2.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의 현주소

  현재 서촌지역의 주거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소방차 한 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 120여평 내외의 작은 거주공간! 몇 채 남지 않은 한옥, 그것도 비가 새 기와위에 천막을 덮은 한옥!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 다니는 고양이! 토관의 하수도가 붕괴되어 물길을 읽고 흘러가는 하수! 오죽하면 재개발을 주장했던 분이 한옥보존을 주장하시는 분들에게 1주일 정도만이라도 이곳에 살아보라고 했을까?

3. 서울시의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에 대한 개발 방향은?

  그런데 서울시는 지난 9월 중순경 1971년에 지은 옥인아파트 300여 세대를 철거하고 주변을 옛모습으로 복원한다고 발표하였다. 일명 수성동 계곡, 정선의 진경산수화 모습 그대로 복원이 그것이다.

이곳을 20116월까지 원형을 복원하는 쪽으로 녹지공간으로 조성하여 역사 문화 자연유산의 가치를 회복한 후 광화문, 광화문광장 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성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한옥을 보존하겠다면서 개최한 설명회에서는 인왕산 기슭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철거중인 옥인아파트를 거쳐 경복궁 전철역 쪽으로 흐르는 복개된 물길인 옥류동 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청계천과 연결하는 물길을 조성하겠다고 하였으며 이는 언론에도 보도되기도 하였다.

4. 앞으로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의 개발에 대한 조언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수성동 계곡의 옛 모습을 찾아 주변의 관광자원과 연계하려고 하는 등 지역을 발전시키려는 서울시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한 거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개선에도 많은 신경을 써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지역의 어느 부분만이 개선된다고 그 지역이 발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서촌지역의 발전은 서촌지역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몰려오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는 삶의 편리 즉 인간 중심으로 모든 개발 방향이 정해져야 함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수성동 계곡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기를 기대하면서.....명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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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랑의 서촌지역 엿보기

-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 한옥! 다층구조로 변형하여 보존할 수 있을까? -

  도시 주거의 새로운 경향으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의 도시한옥 주거에 대한 세미나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서울시는 2010310일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을 한옥과 골목길을 보존한다는 내용으로 경복궁 서측 제1종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한바 있으며 그 후 주민들은 서울시의 서촌지역 개발방향에 대하여 찬반 논란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서로간의 갈등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의 개발방향에 대해 어떤 의견이 제시 되었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주민을 위하는 일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의 현 주소

  경복궁 서쪽의 서촌지역은 한옥만 집중적으로 밀집해 있는 북촌과는 달리 한옥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시대의 건축물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한옥의 거주 공간은 66이하가 대부분으로 비좁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출입할 수 없는 골목길이 한옥 등 건물들을 연결하고 있어 서울시내에서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한 곳 중 한곳으로 꼽히고 있다.

  몇 해 전만해도 이곳 주민들은 체부동 지역과 누하동 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부동산 가치의 상승 등을 기대하였으나 서울시가 경복궁 서측 제1종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면서 한옥과 골목길을 보존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서울시의 이와 같은 계획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던 주민들이 다수 있었으나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그런 정서는 잦아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하다.

2. 세미나 주제발표 주요내용

  이번 세미나는 급속한 상업화로 인한 공간의 변질을 고민하는 반복된 토론에 그치지 말고 바뀐 환경에 맞도록 한옥의 유연하고 적극적인 변형을 실천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에서 열렸다. 한옥이 도시의 상업화 때문에 주거공간으로서의 입지를 잃었다고 하지만 고밀화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의 조건에 적응하지 못해 한옥이 스스로 도태한 일면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 건축학부 한모교수는 고밀도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사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변신의 방법을 찾는 것 외에는 한옥의 탈주거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나무와 흙 등 전통적 주재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공간을 수직적으로 집합시킨 복층 도시 한옥의 절충 방식을 제안했다. 순수한 목제구조만으로는 이층 공간에 흙바닥의 마당을 마련하기 어려우므로 아래층은 평지붕의 양옥으로 만들고 그 위에 한옥 공간을 결합해 올리자는 것이다.

  ○○도시건축사사무소 조모대표는 서울 서초 어린이도서관에서 이와 비슷한 유형을 제안한 경험이 있다면서 경북 경주 양동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 등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급의 한옥만을 전통주거의 순수한 원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한옥은 애초에 원형이 고정돼 있던 주거형태가 아니라 이 땅의 생활상이 변하는데 발맞춰 자연스럽게 진화해 온 건축양식이다.”고 했다.

  ○○대 건축학부 이모교수는 오랜 세월의 변화를 더께 쌓으며 변화해 온 흔적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이 지금 서울 도시한옥을 둘러싼 풍경을 편안하게만 볼 수 없는 이유라며 필요에 따른 공간의 변화는 유연하게 수용해야겠지만 상업적인 이유로 인한 급속한 공간의 변질을 제어할 정책적 장치도 더 늦기 전에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주제발표 내용에 대한 생각

  주제발표자들의 의견은 서촌지역의 한옥을 전통적 한옥양식으로 보존하는 것 보다는 도시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며 다층구조의 한옥으로 변형하여 보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현재 서촌지역의 한옥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부터 논의되어야 할 것 같다. 소규모이고 낡아서 개보수할 가치가 없는 한옥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한옥을 다층구조로 변형을 하려면 현재의 한옥을 철거하고 신축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좁은 골목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소방차량이 통행할 수 있을 정도의 도로를 확보해 화재 등의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논의 되었던 경복궁 서쪽 서촌지역의 개발그림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여 전향적인 방향으로 그려져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개발방향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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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서촌(세종마을)마을 소개

서촌애(愛) | 2011. 1. 31. 17:28 | Posted by 명태랑 짜오기

  명태랑의 서촌지역 엿보기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서촌지역의 매력

     서울 종로구 체부동, 필운동, 누하동, 옥인동 일대 경복궁 서쪽의 서촌지역이 역사가 숨쉬는 문화촌으로 부할한다고 한다. 경복궁 북쪽의 북촌이 명문 권세가의 동네였다면 서촌지역은 화원, 서리, 서당 선생 등 중인들의 삶의 흔적이 배어 있는 곳이다. 세종대왕께서 태어나신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인왕산으로 조선시대 산수화가 겸재 정선이 인왕재색도”, “청풍계도에 그 모습을 담았다. 한번 둘러보면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된다.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 곳으로 서울 인왕산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서울 성곽이다. 우 백호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인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4대문안의 모습은 장관 그대로이다.

     또한 조선시대 무인들이 활쏘기 훈련을 하였다는 황학정, 근대 교육의 산실인 배화대학과 매동초등학교, 종로도서관, 사직단, 단군성전 등이 있으며 인왕산 기슭에 조성된 숲속산책길이 아주 좋다.


(황학정)


(황학정 : 활터)


(배화여대 정문)

 

(매동초등학교 정문)


(인왕산 기슭에 조성된 산책길)


(인왕산 기슭에 조성된 산책길)

멋집 맛집

     다음으로 서촌지역을 두루 살펴본 후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는 멋집 맛집 또한 좋습니다. 필운동 재래시장 끝부분과 필운대길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는 일본풍 음식점인 마고꼬로는 연인들이 이용하기에 안정맞춤인 것 같고 자하문길 좌측에 위치한 칼국수에 빈대떡은 우리의 입맛 딱 맞는 그런 곳입니다.

 


(깔끔한 일본풍 음식점 마고꼬로 전경)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칼국수에 빈대떡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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