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18층서 진동 느낀 주부, 시댁 단독주택서 피난 생활저층 이사, 고층 분양권 처분 현상도…"고층이 건물 안전성은 유리"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과 잇단 여진으로 영남권 주민들의 불안이 고조된 가운데, 특히 아파트 고층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고생이 심하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흔들림을 느낀 뒤 길고 긴 계단을 내려와 아파트 밖으로 피신하기까지 극한의 공포를 체험한 주민들은 언제 다시 집이 요동칠지 모른다는 걱정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은 해본 적 없는 '저층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극소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도 있다. '로열층'이라 불리며 인기가 높은 고층의 위상이 지진으로 함께 흔들리는 것이다. 다만 부동산 업계에서는 여진이 점차 잦아든다면 고층을 꺼리는 분위기 역시 일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건축 분야 전문가들은 지진에 따른 건축물 구조 안전성은 저층보다 오히려 고층이 뛰어나기 때문에, 단순히 고층에 산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 자녀 데리고 1층까지 까마득한 피난길…'고층의 고충'
울산시 남구 달동 아파트에 사는 30대 주부 박모씨는 규모 5.8의 지진을 경험한 이달 12일 이후 중구 다운동에 있는 시댁에서 생활하고 있다. 18층 집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자녀와 함께 맞이한 강진의 기억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시댁은 평범한 단독주택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박씨에게는 큰 위안이 됐다. 두 자녀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느라 하루 두 차례 중구와 남구를 오가고 있지만, 박씨에게 그런 불편은 지진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박씨는 "강한 지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 있어 지금으로서는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 난다"면서 "집을 옮기는 문제를 남편과 진지하게 상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구의 한 아파트 4층에 사는 김모(45)씨도 엘리베이터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집으로 올라가려고 4층 버튼을 누르자 19층 버튼을 누른 이웃이 "저층에 살아서 좋겠다"며 인사를 건넨 것이다. 그 이웃은 지진 때 자녀 2명을 데리고 비상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왔던 때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씨는 "저층에 산다고 부럽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라면서 "그 입장이 되면 상당히 두려울 것 같아서 공감됐다"고 말했다. 울산 부동산 관련 포털사이트 카페 등에도 '아파트 20층을 분양받았는데 포기할까 고민 중이다'거나 '지진 때문에 저층으로 이사 계획이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등의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유례없는 강진은 모두에게 공포와 불안을 안겼지만, 즉시 지상으로 대피하기 어려운 아파트 고층 입주민들은 걱정거리를 하나 더 안고 있다.
◇ 저층 이사, 분양권 처분…고층 기피 분위기 감지
아파트 로열층은 너무 높거나 낮지 않으면서 일조권이나 조망권을 잘 갖추고 있는 층을 말한다. 통상 업계에서는 아파트 전체 층수의 중간 이상 고층을 로열층으로 본다. 가령 30층짜리 아파트라면 15층 이상 고층이 분양가도 높고, 전매할 때 프리미엄도 더 많이 붙는다. 그런데 경주 지진 발생 이후 로열층 대신 저층을 선호하는 일부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울산혁신도시 아파트 거래를 주로 취급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지진 이후 17층을 내놓고 3층으로 이사한 고객이 있다"면서 "아직 많지는 않지만, 집을 구하면서 지진에 대비해 저층을 찾는 손님들이 있다"고 밝혔다.
북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한 신축아파트 24층 분양권 소유자가 계약금 2천만원을 손해 보더라도 분양권을 처분하고 싶다고 상담해 왔다"면서 "실제 거주 목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지진을 겪고는 입주를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사례나 분위기가 아직 일반적이지는 않다. 여전히 로열층에 대한 수요가 많고, 고층과 저층의 가격 차이도 분명하다. 그러나 여진이 장기간 계속되거나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만한 진동이 발생한다면, 저층 선호나 가격 변동 등 실제 아파트 거래 시장에 영향을 미칠 여지 또한 충분하다.
◇ "고층이 진동 심해도 건물 안전성 높아"…비구조재 낙하는 주의해야
지진과 건축 분야 전문가들은 고층이라서 지진동을 상대적으로 크게 느낄 수는 있지만, 건물 구조적 안전을 더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오히려 고층 건물이 저층 건물보다 지진에 더 잘 견디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물 구조는 지진파 주기(週期), 즉 흔들리는 시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저층은 짧은 시간 여러 번 흔들리면서 구조에 영향을 받지만,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주기가 길어진다. 밑에서 흔들면 고층에서 그 폭이 크기는 해도 천천히 흔들리며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에 구조에 영향을 덜 미친다는 것이다. 12일 경주 지진 때 부산의 건축물 피해가 1∼3층 저층 건물에 집중된 것도 이런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울산대 건설환경공학부 김 모 교수(한국지진공학회 부회장)는 이를 '상대 변위(變位·위치나 모양이 변한 정도)'라는 개념을 이용해 설명했다.
지진으로 1층이 좌우로 1㎝ 흔들리고 한 층씩 높아질 때마다 진동이 1㎝씩 커진다고 가정하면, 10층은 10㎝ 흔들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10층만 따로 10㎝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9㎝가 흔들리는 9층 위에서 1㎝ 더 움직이는 셈이어서 건물 구조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고층일수록 흔들림이 클 수밖에 없지만, 지진이 미치는 힘은 저층보다 덜 받는다"면서 "지상에서 멀어 대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문제는 있지만, 건물 구조적 안전성은 고층이 더 유리하다"고 밝혔다. 다만 흔들리는 폭이 큰 영향으로 외벽 타일, 마감재, 유리 등 비구조재는 저층보다 지진에 취약한 한계가 있으므로 낙하물에 따른 '2차 피해'를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2016년 9월 30일 매일경제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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