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재스민 혁명의 향기는 아랍의 봄을 낳고...

- 재스민 혁명의 훈풍은 중동지역에 민주화의 봄을 이끌어내고...

  아랍권에서는 2011년을 아랍의 봄이라고 할 정도로 2011년은 격동의 한 해였다. 2010년 말 작고 가난한 나라 튀니지에서 발생한 반정부 민주화 시위인 재스민 혁명의 여파는 인근 주변국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지구촌을 들썩인 아랍의 봄의 흔적을 살펴보고 2012년을 조망해 본다.

1. 재스민 혁명의 발원과 2011년 아랍의 봄 성과

  재스민 혁명의 발원지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였다. 정부의 부당한 단속에 항의하며 몸에 불을 붙였던 젊은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당시 26세)가 2011년 1월 4일 숨지자 분노의 불씨는 독재와 가난에 지친 튀니지 민중의 가슴에 옮겨 붙었다. 반(反)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됐고 결국,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1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23년 철권통치는 민중의 분노 앞에 무너졌다. 반정부 시위의 동력은 생활고와 독재, 지도층의 부패에 대한 염증이었다.

  10% 가까운 실업률에 시달리던 이집트인들은 이웃 나라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이 성공하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다음 차례”라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30년간 비상계엄령에 의지해 권좌를 지켰던 무바라크는 군대를 앞세워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발생 18일 만인 2011년 2월 11일 끝내 하야했다.

  ‘아랍의 봄’리비아의 42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정권이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총칼로 답하면서 시위는 내전으로 비화했다. 리비아 사태는 2011년 10월 20일 서방의 지원 속에 기세를 탄 시민군에게 카다피가 붙잡힌 뒤 숨지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예멘을 33년간 장기 집권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2011년 11월 23일 면책을 조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약속했다.

2. 재스민 혁명의 향기는 중동을 넘어 확산 중

  2011년 예보 없는 태풍이었던 ‘아랍의 봄’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채 ‘1막’을 내렸다. 서막의 희생자 대부분은 이집트와 리비아, 예멘 등 세습을 시도했던 공화정 국가의 독재자였다. 현재진행형인 이 지역 민주화 시위는 2012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완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아랍 국민들의 투쟁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 퇴출의 타깃은 군주제를 표방한 중동국 지도자들이 될 공산이 크다.

  아랍 각국은 격변과 혼란을 감내하며 숨 가쁜 1년을 버텨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시리아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부자세습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국내외적 퇴진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붙들고 있으나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국민 다수를 이루는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가 아사드의 시아파 정권에 등을 돌렸고, 야권 세력이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구성하는 등 반정부 시위가 조직화되고 있다.

  시민혁명이나 내전이 아닌 중재를 통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예멘식 모델이 다른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절대왕정과 독재자들의 ‘낙원’으로 여겨졌던 아프리카 중, 남부 국가들로 민주화시위가 확산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아랍의 봄을 지켜보며 중동, 아프리카 국민들이 권위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의식을 키운 만큼 민주화 혁명의 불길이 사하라 이남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또 이집트, 리비아 등 혁명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파열음을 내온 국가들이 내년에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