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짜오기의 미소/세상 속으로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 하나.

170년전의 건축물, 99칸의 대저택에 100명이 넘는 하인들이 함께 살았다고 전해지는 경주의 최부자집.

집안을 다스리는 육훈으로 이미 유명하다.

최근에 전해들은 그 후손들의 이야기 하나...

 

경상도 최부자 집의 딸은 함경남도 출신의 공무원과 결혼을 하였다.

결혼 할 당시 신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상도의 풍습과 모든 것을 신부 집에서 준비해 오는 함경도의 풍습이 서로 달랐다.

신부는 시댁에 혼수를 준비하지 못했고, 주위 어른들께 인사를 드려야만 하는 신랑은 어쩔수 없이 월급을 가불해서 혼수를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신행길에 올랐다.

최부자는 사위에게  서로 다른 가풍을 이해 하라고 당부를 하면서 사위를 뒤뜰로 나오게 했다.

뒤뜰에는 크기가 다른 세개의 삽이 나란히 서 있었다.

최부자는 사위에게 삽을 하나 고르라고 하였다.

사위는 장인 어른의 일을 많이 도와 드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가장 큰 삽을 골랐다.

최부자는 큰 삽으로 팔 수 있는 땅을 그려주고 파라고 지시를 했다.

사위는 힘을 다해서 땅을 파내려 갔고, 어느정도 팠을때 땅 속에 무엇인가 묻혀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최부자의 명령대로 묻혀있던 자루를 파내어 끌어 올렸다.

자루 속에는 도자기 하나가 들어 있었다.

최부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송대의 진귀한 보물이라며 도자기를 결혼 선물로 주면서 잘 보존하라고 하였다.

서울로 올라온 사위는 인사동의 골동품 가게에서 도자기 감정을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당시 서울 아파트 시세가 150만원 정도 하였는데, 감정가는 2억원이 넘는 엄청난 보물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사위는 도자기 보관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결국 은행에 맡겨서 보관을 하였고, 그렇게 수십년이 지나 퇴직을 하고서야 도자기를 찾아왔다.

지금 그 가격을 어떻게 환산할 수는 없지만, 집안의 보물로 잘 관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로만 듣던 경주 최부자의 사려 깊은 마음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어른의 뜻을 모셔 집안의 가보로 잘 보관하고 있는 사위의 강직함도 덧보였다.

사실 그때 도자기를 처분해서 땅이라도 사 두었다면,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수도 있을텐데~~~ㅎㅎ

그리고 그 나머지 두개의 삽으로도 무엇을 캘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다음에 더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욕심을 버리고 성실히, 열심히 노력하며 가치를 만들어 가는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

어느새 세월을 만들어 버린 내가 살아 온 삶에 대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