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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랑의 공부하기/부동산 공부하기

“이사비 1000만원 주면 집 빼드릴게” 임대차법이 부른 갈등

 

 

세입자·집주인 곳곳서 갈등

 

 

“제 집에 들어가는데, 전세 만기 되는 세입자가 1000만원을 달라네요?” 전세살이 하던 30대 무주택자 A씨는 최근 수도권에 6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부동산 임대차법 개정 관련 뉴스를 주의 깊게 봐온 A씨는 꼼꼼히 준비를 했다. 매매 계약서를 쓸 때 ‘반드시 11월 중 입주한다’는 내용의 ‘특별 계약 조건’을 걸고, 매도인에게 세입자로부터 ‘계약 만기일에 집을 빼주겠다’는 확인도 받아 놓으라고 요구했다. 두 달 후면 ‘내 집’에서 산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A씨에게 난관이 닥쳤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들먹이며 이사비 1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해 온 것이다. 매도인에게 “세입자에게서 집을 빼주겠다는 약속을 받지 않았느냐”고 따졌지만, 매도인은 “그냥 세입자를 달래는 게 좋으니 이사비를 500만원씩 부담하자”고 했다. A씨는 이를 거부했고, 매도인은 “그럼 계약이 파기돼도 위약금을 줄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의 유권 해석에 따르면, 매도인이 세입자에게 ‘새 집주인이 실거주하니 집을 비워야 한다’고 요구하더라도 세입자는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 굳이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매도인은 집을 팔려면 세입자를 달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A씨는 “매도인한테도 짜증이 나지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어 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사비 달라" “못 준다” 곳곳에서 분쟁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법 개정 후 ‘이사비’가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을 폭발시키는 새로운 ‘뇌관’이 되고 있다. 전세 계약이 끝나고 집주인이 실거주하려고 해도 세입자가 거액의 이사비를 요구하거나 새 전셋집을 찾는 데 드는 비용의 일부를 요구해 갈등을 빚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세입자에게 주는 이사비를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를 두고 주택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어설픈 법 개정 때문에 주택 실수요자까지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고, 세입자와 집주인 간 분열과 갈등만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부동산 관련 온라인 카페에는 “실거주할 건데도 세입자 내보내기 위해 이사비를 줘야 하나요?” “얼마 주는 게 적당한가요?” 같은 질문이 수시로 올라온다. 임대차법 개정 전인 7월 서울에서 전세 낀 아파트를 사들인 B씨는 계약갱신청구권 대상도 아닌 세입자가 막무가내로 “못 나간다”고 버티며 이사비를 요구해 골치를 앓고 있다. B씨에게 세입자는 “다른 집주인들은 이사비 줘서 내보내려고 하는데 (당신은) 별로 안 급한 모양이네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경기도 화성에 사는 C씨는 실거주를 위해 내년 5월 전세 만기인 세입자에게 “연말까지 집을 빼주면 이사비로 1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세입자는 C씨의 이사비 제안을 거부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2년 더 살겠다”고 했다. C씨는 “지금 사는 집 계약이 끝나는 연말부터 내년 5월까지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갈등 최악… 칼부림 나도 이상하지 않다“

 

개정된 임대차법은 집주인에게 탈 없이 세입자를 내보내는 문제를 ‘걱정거리’로 만들고 있다. 집주인의 이런 약점을 공략해 이사비 받는 것을 당연시하거나, 새 전셋집을 구할 때 드는 계약금 일부와 부동산 중개 수수료까지 요구하는 세입자도 있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공인중개사로 활동한 김모(58)씨는 “임대차법 개정 이후 전세 세입자와 집주인이 ‘원수’가 된 사례가 많다”며 “이사비나 집 비우는 일정 때문에 ‘유혈 사태’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급하게 집을 처분하려는 일부 다(多)주택자가 세입자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먼저 ‘이사비’를 제안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일시적 2주택자인 D씨는 “종부세·양도세 폭탄을 피하려면 내년 6월 전까지 강남구의 집 한 채를 처분해야 한다”며 “이사비, 중개 수수료, 향후 3년 간 전세금 인상분의 이자까지 챙겨주겠다고 했는데도 세입자가 ‘귀찮게 하지 말라며’ 전화도 안 받는다”고 말했다. D씨의 집은 정부가 지난 6월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은 지역에 있어 세입자가 있는 상태로는 팔 수도 없다. 그는 “온갖 부작용과 선의의 피해자가 쏟아지는데도 무리한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는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2020년 9월 17일 조선일보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