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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서쪽마을의 명칭을 세종마을로 할까, 서촌으로 할까?

  사물의 이름을 짓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 같다. 어린 시절 자랄 때 이름 때문에 고생한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우리주변에서 이름을 짓는 작명소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름을 잘 짓기 위한 사람들의 심리적 갈등이 상업적으로 연결된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마을 이름 때문에 주민들간에 갈등을 겪는다면 우스운 일일까? 바로 경복궁 서쪽지역의 주민들이 마을 명칭을 놓고 벌이는 다툼 아닌 다툼은 재미있기도 하다. 그 사연을 알아보자 

1. 경복궁 서쪽 마을의 명칭을 서촌으로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

  경복궁 서쪽지역을 서촌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복궁 서쪽 지역 일대를 서촌이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10. 6월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을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하고 부터라며 이미 일본인 관광객들이 서촌(西村)이라고 쓰인 관광지도를 보고 찾아올 만큼 국내외적으로 정착한 이름으로 서촌이라는 이름은 이제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가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2010년 말 서울역사박물관이 낸 지역 자료집에서도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 지역을 일컫는 지명으로 성곽으로 에워싸인 조선시대 한양의 서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라며 경복궁 서측지역을 서촌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했던 용례는 옛 문헌기록에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유사한 예는 몇몇 문헌에서 확인된다.고 한다.

2. 경복궁 서쪽 마을의 명칭을 세종마을로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

  경복궁 서쪽지역을 세종마을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최고 성군인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서울 종로구 통의동 137 일대역사적 의미는커녕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서촌(西村)'으로 불려서는 않된다고 한다. 동쪽에서 뜬 태양은 한낮 정점을 찍고 서쪽으로 기울어 전통적으로 동쪽은 상승 새로움, 서쪽은 하락 쇠퇴의 느낌을 준다며 경복궁에서 인왕산 사이에 위치한 통의동, 옥인동 등의 명칭은 세종마을로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종로구 관계자는 "경복궁 서측이라는 명칭은 단지 경복궁의 서쪽과 관련돼 있을 뿐 역사적 배경이나 지명에서 유래한 의미 있는 명칭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서촌이라는 명칭과 관련해 종로구민들 불만이 고조되면서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감안해 '세종마을'이란 명칭을 제시했다.

  이후 청운동 등 15개동 일대 지역주민 130여 명이 세종마을가꾸기회란 사단법인을 만들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및 한글학회와 손잡고 '세종마을 명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는 물론이고 언론사, 인터넷 매체를 상대로 세종마을 명칭을 사용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세종마을가꾸기회오는 15 종로구청장 등과 함께 세종마을 선포식을 갖는다.

- ‘서촌(西村)’이란 명칭이 세종마을로 바뀔 움직임이 있고, 한옥의 신개축이 늘고 있다. 

  최근 서울 북촌에 이어 서촌(西村)’ 지역이 문화와 관광의 요지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서촌이라는 이름을 세종마을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예상되며, 서울시의 한옥지킴이활동의 일환으로 경복궁 서쪽지역을 한옥 수선지원지역으로 지정해 한옥 신개축시 자금을 지원하고 있어 한옥의 신개축이 증가하고 있다.

1. 경복궁 서쪽지역 명칭이 서촌(西村)’에서 세종마을로 바뀔 것인가

  경복궁 서쪽 지역 일대를 아우르는 서촌이란 이름은 대략 2008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작년에 마친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서촌은 현재 체부동, 궁정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창성동, 효자동, 통인동, 적선동, 필운동, 내자동, 통의동, 사직동, 신교동, 세종로동 일대를 말한다.

  종로구 관계자북촌은 옛날부터 북촌으로 불렸지만 서촌은 북촌과는 달리 서촌으로 불린 역사적 근거가 없으므로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이 곳은 세종대왕이 문화와 과학의 성군이라는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에 세종마을로 부르는 것이 좋다.’시민들도 세종마을 가꾸기회를 만들어 세종마을로 부르자는 서명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세종마을 가꾸기회의 공동대표서촌은 해가지는 쪽이라는 의미가 있어 어감도 좋지 않고 시민 정서에도 맞지 않으므로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인 만큼 세종마을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며 시민들의 뜻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서촌(西村)이라고 쓰인 관광지도를 보고 찾아올 만큼 국내외적으로 정착한 이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며 반론을 제기한다. 서촌라이프대표는 서촌이라는 이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가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는데 왜 굳이 다른 이름으로 바꾸려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작년 말 서울역사박물관이 낸 지역 자료집에서 서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이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조명하기도 했다. 자료집엔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 지역을 일컫는 지명으로 성곽으로 에워싸인 조선시대 한양의 서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라며 경복궁 서측지역을 서촌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했던 용례는 옛 문헌기록에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유사한 예는 몇몇 문헌에서 확인된다.’고 되어 있다.

2. 경복궁 서쪽지역 한옥 신개축이 늘고 있다.

  서울시내 한옥이 전멸될 위기에 처해있다. 1960년대에 128천여 가구이던 한옥이 2008년도에 14천여 가구로 줄어들었다. 서울 재개발이 낳은 결과다. 서울시와 정부는 뒤늦게 한옥지키기에 나섰으며 서울시는 2008년도 한옥선언의 후속조치로 경복궁 서쪽지역을 한옥 수선지원지역으로 지정해 한옥 신개축시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한옥 4,500가구의 신개축지원에 총 3,700억 원을 투입한다.

  최근 아파트에 식상함을 느끼면서 개성있고 친환경적인 주택을 찾는 수요층이 한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087건이던 한옥 신개축사업이 지난해엔 43건으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비싼 건축비를 한옥 보급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한다. 일반주택의 경우 3.3당 건축비 300만원 안팎인데 비해 한옥은 목공예 수준이나 재료에 따라 700~1,500만 원이다. 한옥은 일반주택이나 아파트에 비해 열린 공간이어서 건축면적이 작아도 되므로 건축비를 낮춰 한옥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현 단계에서 정부의 지원형태로 실질 부담을 줄이는 게 효과적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현재 한옥을 지을 때 건축비 8천만 원을 지원한다.

- 왕기가 서려있다는 인왕산 자락의 서촌지역!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경복궁 서쪽 마을을 일컫는 서촌(西村). 고관대작부터 중인, 아전까지 서로 다른 신분층이 모여 살던 인왕산 자락 동네다. 사대부 중심의 북촌, 중인 중심의 남촌과는 다른 독특한 생활문화를 형성한 서촌은 조선시대 경치, 문학, 그림 일번지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2010 생활문화자료조사집 서촌-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에서 소개한 서촌의 내력을 정리했다.

1. 인왕산 왕기설

  서촌은 오늘날의 사직동, 체부동, 필운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효자동, 신교동, 창성동, 통인동, 통의동, 청운동, 부암동 등에 해당한다. 서촌의 역사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시작된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은 백악이다. 백악의 우백호인 서쪽 인왕산은 높고 우람해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는 논의도 있었다.

  차천로(1556~1615)오산설림(五山說林)에서 무학이 점을 쳐서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다. 그러나 정도전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옛날부터 제왕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다스렸지, 동쪽을 향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무학이 지금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200년 뒤에 가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라고 적었다.

  전설처럼 민중 사이에 오래도록 전해온 인왕산 왕기설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퍼졌다. 광해군 대에 인왕산 기슭에 경희궁과 인경궁을 세운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실제로 이 부근에서 살았던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됐다.

  세종이나 영조의 탄생지도 서촌이다. 인왕산은 경치도 좋고 경복궁에서도 가까운 주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그런데 명승지임에 비해 이름난 정자는 많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임금이 사는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447420일 밤 안평대군(1418~53)이 복사꽃이 우거진 낙원에 다녀오는 꿈을 꾸고 화가 안견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안견이 사흘 만에 그려 바친 것이 일본 덴리대 소장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은 그림이 완성된 지 3년 뒤인 1450년 설날 몽유도원도라는 제첨(題簽)을 쓰고 시를 지었다.

  이듬해 꿈에서 본 무릉도원과 비슷한 풍경을 인왕산 기슭에서 발견해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었다.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 당대의 문인 학자들을 초청해 경치를 즐기며 시를 지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이 성공한 뒤 의정부에서 안평대군을 처형하자며 아뢴 죄목 중 첫 번째가 그 자리에 무계정사를 지었다는 점이었다. 인왕산이 왕기가 서린 곳인데, 장자가 아닌 왕자가 왕위에 오를 곳이라 왕권 탈취의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 외에도 김종서, 이개,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등 당대 최고 문신 21명이 친필로 글을 썼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자 이들의 운명은 둘로 갈라졌다. 신숙주, 정인지 등은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에 오르고, 안평대군과 김종서는 목숨을 잃었다.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은 3년 뒤 단종 복위운동을 계획하다 실패해 역적으로 처형당했다. 부암동에는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 있어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 터임을 나타내고 있다. 안평대군의 옛 살림집 근처에 있었던 기린교로 추정되는 돌다리가 지금은 철거된 옥인동 옥인아파트 9동 옆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문인화가 겸재 정선(1676~1759)18세기 조선의 독자적인 진경산수화풍을 창출한 인물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웃대(서촌)를 그린 그림은 60대 이후 체득한 완숙한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라 예술성이 뛰어나다. 인왕산 주봉 전체를 화폭에 옮긴 그림으로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강희언(1738~84 이전)인왕산도가 있다.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76세인 1751(영조 27)에 그린 노년기 역작이다. 사실적인 재현에 기초하면서도 내면의 심상을 투영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가령 백옥색을 띤 인왕산 바위는 검은 먹색으로 반전시켜 장중한 무게감을 줬다. 인왕산 기슭에 폭포를 두 군데 그린 것도 특징이다. 실제로 인왕산에는 멀리서 보일 정도의 폭포는 없다. 청풍계 계곡과 수성동 쪽으로 내려오는 두 개의 물줄기를 원경인 그림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강희언의 인왕산도는 객관적인 시각에 충실한 그림이다. 인왕산 골짜기를 자세히 파악해 가옥과 지형의 특징을 표현했고, 도성의 성벽과 능선도 빠뜨리지 않았다. 강희언은 특이하게도 여느 산수화에서는 여백으로 남겨두는 하늘을 수채화처럼 채색했다. 하늘의 기상을 관측하는 관상감 관원이었던 그는 하늘도 그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2. 정조대왕 국도팔영

  정조(1752~1800)는 서촌 지역에 자주 행차했다. 사당인 육상궁(증조모), 선희궁(할머니), 연우궁(할머니)을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참배를 마치면 선희궁 옆에 있던 세심대에서 신하들과 활쏘기를 했다. 세심대는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열양세시기“(세심대는) 꽃나무가 많아 봄의 꽃구경이 장관이다. 영조, 정조, 순조, 익종이 여기에 자주 거동하고 한 달 동안 사람들이 구름같이 구경했다고 적혀 있다.

  세심대는 원래 당진현감을 지낸 이정민(1556~1638)의 집터였으나 도성에서 경치 좋기로 유명해 광해군이 세심대를 취하고 대신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이정민은 이를 피해 홍주 봉서산으로 낙향했다고 한다. 정조는 세손 시절 국도팔영(國都八詠)’을 지었는데, 인왕산에 자주 오르던 때라 주변 명승을 많이 꼽았다. 8곳의 명승 중 필운대, 청풍계, 반송지, 세검정 등 인왕산 자락 서촌의 명승지 네 곳이 포함됐다.

3. 이상의 집, 윤동주의 하숙집

  20세기가 된 뒤에도 서촌은 예술의 중심지였다. 이중섭, 이상범, 박노수 등 당대 최고의 화가와 노천명, 윤동주, 이상 같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 이곳에 살았다. 이상(1910~37)3세 되던 1912년 형편이 넉넉하던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갔다.

 
이상은 백부의 집인 통인동 154번지에 23세까지 살았다. 짧았던 생애 대부분을 보낸 곳이지만 통인동이 작품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경성의 모던보이로 유곽이나 카페에 대한 글을 썼던 그에게 전형적인 주택가인 서촌이 작품에 들어올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상의 집은 백부가 세상을 떠난 1933년 팔린 뒤 헐려 자취가 없어졌다. 그러나 2007년 문화유산 보전 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사들여 이상 기념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윤동주(1917~45)가 서촌으로 이사온 까닭은 대동아전쟁이 시작되면서 연희전문학교 기숙사 식사가 부실해져서다. 그는 졸업반이던 19415월부터 9월까지 누상동 하숙집에 살면서 십자가’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등의 작품을 지었다. 윤동주의 하숙집은 10년 전 헐렸고 그 자리에 3층짜리 다가구주택이 들어서 있다.

4. 서촌의 문화재

  사적 제149호로 지정된 육상궁과 칠궁은 조선조 500여 년간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 7명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이다.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고종 19(1882) 불타버린 것을 이듬해 복구했다. 순종 1(1908) 이후 여러 곳에 분산돼 있던 여러 신위를 옮겨와 결국 칠궁이 됐다. 저경궁(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 신궁), 대빈궁(숙종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 신궁), 연호궁(영조 후궁이며 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 신궁), 선희궁(영조 후궁이며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 신궁), 경우궁(정조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 신궁), 덕안궁(고종 후궁이며 영친왕 생모인 순헌황귀비 신궁)이 모셔져 있다.

  등록문화재
93호인 배화여고 생활관은 당초 선교사를 위해 주택으로 지어졌다. 1915년 무렵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맨 아래층이 반지하로 되어 있어 현관으로 들어서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전체적인 외관은 서양식 붉은 벽돌벽과 서양식 기둥을 사용했지만, 한옥의 기와지붕을 올려 서양식과 한국식 건축이 섞여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문화재자료 9호로 지정된 백사(白沙) 이항복(1556~1618) 집터는 필운대(弼雲臺)’라는 바위 글씨로 남아 있다. 배화여자 중 고교 교사 별관 뒤편 높은 암벽의 왼쪽에 세로로 새겨진 글씨다. 이항복의 글씨라고도 하고, 그 후손인 이유원(1814~88)의 글씨라 전하기도 한다. 필운은 이항복의 호로 서산(西山), 즉 인왕산을 뜻한다.

  
그 밖에 동양화가 이상범 가옥(등록문화재 171), 박노수 가옥(문화재자료 1), 홍종문 가옥(서울시 민속자료 29), 해공 신익희 가옥(시도기념물 23) 등 문화재자료가 서촌에 남아 있다. 박노수 가옥의 경우 일제시대 대표적 친일파인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 한국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이 1930년대 후반 설계했다. 조선 말기 한옥 양식과 중국식, 서양식 수법이 섞여 있는 절충식 가옥이다.(대부분의 글은 서촌(서울역사박물관) 자료집에 실린 허경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의 논고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촌의 모습에서 발췌·요약했다. 인왕제색도 관련 글은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논고 한양 웃대의 명승 명소와 진경산수화에서 추렸다.)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설치하여 광화문 일대 침수피해 해소 -

  지난해 추석 때 내린 기습폭우로 광화문일대가 온통 물난리에 휩싸였었다. 경복궁 서촌지역의 옥류동천과 백운동천으로 모여든 빗물이 수로를 통해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하고 범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는 빗물배수터널을 만들어 서촌지역의 옥류동천과 백운동천의 물을 청계천으로 바로 흘려보낸다는 복안이다.

1. 기상이변과 광화문일대의 빗물 처리 능력

  기습폭우 등 기상이변에 따라 브라질에서는 840여명이 사망하고 540여명이 실종하였고, 호주에서는 2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폭우로 인한 침수피해는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한반도의 경우는 1912~2005년 사이 연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여 같은 기간 세계 평균기온 상승폭(0.6)2.5배를 기록하는 등 온난화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지난해 추석연휴기간 중 921일 내린 기습폭우와 같이 침수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집중호우의 발생빈도가 ’71~’8057회에서 ’92~’01 107회로 약2배 증가(150mm 이상 호우기준)한 상황이어서 저지대 수해취약지역의 침수피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현재 광화문광장의 배수능력은 10년 빈도의 폭우에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지난 2001714일부터15일까지 내린 집중폭우로 주택침수 94,375세대, 사망 35, 부상 104명이 발생하였으며 2010921일 내린 기습폭우로 주택침수 17,905세대, 부상 1명이 발생하여 서울 도심의 심장부이자 국가상징가로인 광화문광장의 배수능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2. 2013년 지름 3.5m이상 길이 2Km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설치

  서울시는 지하 40m 이상의 대심도 지하공간에 지름 3.5m이상 길이 2Km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국내 최초로 설치하여 현행 시간당 75mm를 소화할 수 있는 10년 빈도인 광화문광장의 배수능력을 시간당 102mm가 쏟아져도 침수되지 않는 50년 빈도까지 대폭 개선한다.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은 설치심도가 깊기 때문에 자연경사에 따라 물이 흐르는 일반적인 하수관 구조와 달리 유입부와 유출부의 수두차이에 의해 물이 흐르는 역사이펀 구조형식으로 설치된다. 역사이펀이란 횡단하거나 움푹 팬 저지대를 통과할 때 지형에 따라 또는 도로 철도 그 밖의 수로 등과 입체 교차할 때 그 아래쪽을 U자형으로 부설한 수로 부분이다. 사이펀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3. 초당 40빗물을 광화문 광장 안거치고 청계천으로 직접 배수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은 백운동천, 옥류동천이 있는 종로구 통인동에서 청계천이 있는 중구 삼각동까지를 연결하여 광화문 일대의 직접적 폭우 피해 원인인 백운동천의 물이 광화문광장을 통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직접 유입되도록 한다.

지금까지는 비가 오면 백운동천의 물은 광화문 사거리로 유입되고, 이는 중학천에서 나오는 물과 합쳐져 청계천으로 유입됐기 때문에 배수능력을 초과한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릴 경우 빗물이 넘쳐 광화문 광장이 침수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921일에 광화문광장이 침수된 이유 역시 3시간 동안 198.5mm의 국지성 집중폭우가 쏟아지는 등 일시적으로 너무 많은 비가 쏟아져 순간적으로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인데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이 설치되면 폭우 시 초당 40의 빗물을 광화문 광장을 거치지 않고 청계천으로 직접 배수할 수 있어 광화문광장의 침수를 획기적으로 해소 할 수 있게 된다.

    ※ 청계천은 80년 빈도로 설계되어있어 50년 빈도의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이 설치돼도 범람 위험이 없으며 본 공사에 약 320억 원을 투입하여 올해 설계계약을 하고 내년에 착공한 후 2013년 말에 완공할 예정이다. 본 공사는 종로구 통인동을 입구로 지하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시민들의 교통 불편은 전혀 없다.

4. 오는 6월까지 관거 및 저류시설 보완 설치 등

  서울시는 오는 6월까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이 완성(2013년 말)되기 전까지 광화문광장 침수방지를 위하여 세종주차장 등 주변 지하시설을 임시저류시설로 운영하고 광화문광장 주변 하수관거를 정비하는 등 하수도시설을 확충한다.

  기존 하수관의 용량을 초과하는 빗물처리를 위하여 22,000규모의 저류조를 설치 운영하고, 광화문사거리에 시간당 28,000노면수 배제가 가능한 비상용 암거를 신설한다.


 

명태랑의 서촌지역 엿보기

- 서울시, 서촌지역 한옥 매입해 한글 사랑방(게스트하우스) 운영 -

  서울 세종대로 주변이 한글과 관련된 마당과 공원, 게스트하우스 등을 갖춘 한글문화관광의 중심지로 꾸며진다. 서울시는 세종대로 광화문~세종로 사거리 주변인 통의, 통인, 내수, 세종로동 일대 47한글 마루지(랜드마크를 뜻하는 우리말 조어)’로 조성한다.

1. 세종로공원에 8,868규모 한글 11,172마당조성

  서울시는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에 8,868규모 한글 11,172마당을 올 상반기 중 조성한다.

  ‘한글 11,172마당이란 한글자모 24자로 만들 수 있는 총11,172 글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가로, 세로 10cmx10cm 돌포장석에 11,172명의 국민이 한자씩 써서 공원 바닥에 설치할 계획이다. 시는 한글 11,172마당조성에 참여할 시민을 오는 2월 중 공모를 통해 선정할 계획이며,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발표한다.

  한글과 별도로 각국 대사관의 협조를 얻어 해당 국가의 돌에 각국의 고유문자로 새긴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담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시할 예정이다.

2. ‘한글학회~주시경집터~사직로’ 900m 주시경길 시범가로 조성

  국어학자인 주시경은 일제 강점기 탄압에도 불구, 한글에 대한 연구와 보급을 끊임없이 진행해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올해 조성될 시범가로에는 픽토그램을 활용한 도로 표지판, 안내표지판과 한글 벤치, 한글관련 야외 전시와 각종 퍼포먼스 공간을 마련한다.

  서울시는 시범사업 추진시 인근 주택, 상가 등 건물 전면공간의 개선이 함께 이루어질 때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 주변 상인, 공공기관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3. 내수동 75번지 일대 약 1,700주시경 기념공원 조성

  종로구 내수동 75번지 일대에는 주시경 선생을 기리는 기념공원도 조성한다. 주시경 집터는 현재 주상복합건물(용비어천)내에 주시경 집터를 알리는 기념조형물만 설치되어 있다.

  이에 주시경집터의 복원은 현실적으로 곤란해 인근 공원내에 주시경 기념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주시경기념공원 조성은 여론수렴 등을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 후 2012년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4. 1박 이상 머물면서 한글을 배우고 체험하는 한글 사랑방운영

  서울시는 서울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한글 마루지대상지에서 최소 1박 이상 머물면서 한글을 배우고 체험하며, 한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한글 사랑방(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시는 우선 시범사업으로 올해 전통한옥 육성지역인 서촌지역의 적정시설 대상지를 선정, 매입2012년 마당과 뒤뜰이 있는 한옥 건물로 리모델링해 운영할 계획이다. 숙박방은 온돌창호 등 한옥구조를 유지하면서 독립공간은 보장하되, 세면, 식사 등은 한국전통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시설은 약10인 규모의 숙박방, 공용식당(마루), 정보마당(pc,독서실), 사랑채(휴식, 대화), 관리실 등으로 구성된다.

5. 종로구 통인동 일대 세종대왕 생가재현 추진

  서울시는 장기적으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태어난 생가 재현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세종대왕 생가터를 알려주는 것은 통인동 자하문로 보도상에 설치된 표석뿐이다.

  20101월 서울시에서 연구한 세종시대 도성 공간구조에 관한 학술연구에 따르면 세종대왕 생가는 준수방 잠저(세종실록)로 통인동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엔 현재 저층의 양옥과 한옥이 밀집되어 있다.

  조선시대 대군의 가사(家舍) 및 가대(家垈)의 규모로 볼 때 약 3,861로 추정되는 세종대왕 생가 재현을 위해 시는, 재현 위치, 규모, 방법 등에 대한 타당성을 우선 검토하고, 대규모 예산이 소요됨을 감안해 생가재현에 대한 시민공감대 형성 후 추진할 계획이다.

6. 그 밖의 한글 마루지사업 추진 내용

  위에 열거된 사업외에 서울시는 한글독음(讀音)프로그램 개발 국제선 항공기 기내방송 송출 등 보급’, ‘가훈 써주기, 한글이름 써주기 등 한글체험 프로그램 확대’, ‘한글을 활용한 공공디자인 픽토그램 개발 등 한글문화상품화 지원’,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 등 한글관련 다양한 행사 개최등의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위 사업의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세종대로 일대 한글마루지 종합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