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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애(愛)

2012년 5월이면 인왕산 기슭 수성동 계곡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 서울시 기념물 31호「수성동 계곡」에 전통 수목을 심고 사모정이 들어선다.

  서울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서울을 채우는 풍경들은 서서히 바뀌었다. 굴곡 많은 현대사 풍랑속에 제 모습을 잃은 도심 속 유적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도 제 모습을 잃은 도심 속 유적이었지만 현재 그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기억과 기록에만 남아 있던 이 사물들이 서울시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옛 모습 찾기가 아니라 선조들의 자부심과 혼을 살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세워지는 것이다.

1. 수성동 계곡의 역사성과 그간 이용실태

  종로구 옥인동 179-1일대 인왕산 기슭의 계곡물소리가 유명하다고 하여 조선시대부터 수성동(水聲洞, 10,097㎡)으로 불리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었고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도 등장하며 안평대군의 집(비해당)이 있던 곳으로 당시 경관이 오늘날에도 일부 유지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일 뿐만 아니라 추사 김정희의 시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 둥 많은 시가 전하며 조선 후기에는 박윤목 등 중인층을 중심으로 저명한 시사(詩社)가 결성되는 등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문학이 사회저변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만든 조선후기 위항문학(委巷文學)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1971년 9개 동 308가구의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며 회색 콘크리트로 덮어 유명한 물소리를 들을 수 없는 무성동으로 변해 버렸다. 수성동계곡 아래에 있으며 그간 기린교(麒麟橋)로 알려졌으나 기린교로 단정할 증거를 찾지 못한 돌다리는 겸재의 그림에 등장하는 데다 사대문안에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 보존된 통돌다리지만 다리 윗부분을 시멘트로 포장해 주민들의 통행에 이용하였다.

2. 수성동 계곡의 복원계획과 그간 추진현황

  서울시는 인왕산 수성동 계곡이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화에 그려져 있는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계획을 갖고 1971년 수성동 계곡에 들어선 옥인시범아파트 9개동 308가구를 960억원을 들여 매입하였으며 2010년 10월 인왕산길 아래 계곡 상류에서 하류 복개도로에 이르는 폭 18m, 길이 190m의 계곡일대와 옥인아파트 옆에 있는 폭 90cm, 길이 3.8m의 돌다리 등 이 지역 10,097.2㎡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하였다.

  현재 아파트 8개동과 단지내 설치된 아스팔트도로 200m(폭 8m), 일부 계곡을 덮은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철거해 원래의 지형이 대부분 드러난 상태에서 큰 돌로 물길 주변을 단장하고 있다. 내년 5월까지 인왕산 자락을 포함한 1만 7,007㎡에 소나무 등 전통 수목을 심고 계곡부에는 사각의 전통정자 형식인 사모정을 만들며 계곡 중간 중간에 징검다리와 목교가 설치되면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 서울 성곽길과 함께 경복궁 서쪽지역의 대표적 역사경관명소로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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