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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랑의 공부하기/부동산 공부하기

계약갱신청구권 뒷돈(?) 시장엔 죄가 없다

 

 

계약갱신청구권 사고파는 시장, 뒷돈 오가는 암시장이란 비판 나와

시장은 사람들의 욕망을 조절해, 잘못된 정책의 피해를 줄일 뿐

시장이 없다면 더 큰 피해 봤을 것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2년 더 살겠다는 세입자를 내보내느라 뒷돈(?)을 줬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심지어 홍남기 경제부총리마저 그랬다고 한다. 그런 부총리를 물러나게 하라는 청와대 청원마저 등장했다. 전월세 시장이 뒷돈을 주고받는 암시장이 됐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러나 시장에는 죄가 없다. 계약갱신청구권 탓에 생긴 암시장이라고 해도 그 시장에는 죄가 없다. 그 시장은 정부가 만든 정책 실패를 교정하는 순기능을 한다. 그러니 시장엔 칭찬을 해야 한다. 그 암시장이라도 없으면 거래 당사자들은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다. 우선 이른바 뒷돈(?)의 성격부터 규정해보자. 그건 계약갱신청구권의 가격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세입자에게 기존 전셋집에 2년 더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반대로 집주인에게는 그 권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를 주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국회를 통과한 법으로 시행된 내용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세입자는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돈을 받고, 집주인은 의무를 지지 않는 대가로 돈을 주게 된다. 뒷돈은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가격인 셈이다.

 

 

하지만 때때로 계약갱신청구권이 행사되면 여럿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맞게 된다. 홍 부총리 경우가 그런 예다. 그는 경기도 의왕 아파트를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가 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세입자는 전셋값 폭등으로 새 전셋집을 구할 수 없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다. 홍 부총리에게 아파트를 산 사람은 그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 처지라고 한다. 홍 부총리 입장에서는 궁지에 몰린 격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해 매도 계약을 파기하면 위약금 문제가 생긴다. 법적 분쟁까지 갈 수 있다. 홍 부총리와 그 아파트 매수자가 피해를 볼 상황이다. 이때 시장은 힘을 발휘한다. 시장은 인간의 욕망을 조절해 타협점을 찾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세입자의 욕망은 기존 전셋값으로 2년 더 사는 것이다. 홍 부총리의 욕망은 세입자를 내보내는 것이다. 매수자는 세입자를 내보내 그 집에 입주하는 것이다. 이 모순된 세 사람의 욕망을 시장은 절묘하게 조정해낸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고파는 시장을 창조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관건은 계약갱신청구권의 가격. 그 가격을 거래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계약이 성립한다.

 

 

우선 세입자 사정부터 들여다보자. 그가 이사를 못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전셋값 폭등이라고 한다. 주변 시세가 2억 5000만 원가량이 올랐다고 한다. 그 돈을 은행에서 연 3% 금리로 2년간 빌린다면 이자가 1500만 원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그 돈만 받을 수 있다면 굳이 홍 부총리 집에 계속 살겠다고 고집을 피울 이유가 없을 거 같다. 그는 1500만 원 이상은 받겠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홍 부총리 입장은 어떨까? 매도 계약이 파기될 때 위약금을 1500만 원 이상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세입자와 협상에 나설 충분한 유인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의 의왕 아파트 전세 문제가 계속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면 경제부총리로서 위신이 망가질 수도 있다. 어쨌든 1500만 원 이상의 돈을 지급할 동기부여가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홍 부총리는 세입자에게 돈을 줬고, 그 세입자는 집을 비워주기로 했다. 세입자도 전셋값 부담을 줄이겠다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켰으며 홍 부총리와 아파트 매수자도 손해를 줄였다. 따라서 계약갱신청구권 거래 시장은 이른바 뒷돈(?)이 오가는 암시장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는 득이 된다. 그러니 그 시장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칭찬해야 한다.

 

 

물론 집주인 입장에서는 억울한 게 사실이다. 계약갱신청구권 거래 시장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던 시장이다. 그 시장이 생겨 추가로 비용을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웬만큼 경제적 형편이 좋은 집주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2년만 참으면 전셋값을 시세대로 올릴 수 있다. 당장은 억울한 마음에 울화통이 터지지만 뒷돈을 줘서라도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진짜 피해자는 신규 전세 계약자들이다. 물가가 오르듯 전셋값도 오르기 마련. 2년 전보다 높아졌다. 기존 세입자들은 대부분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지금 집에 2년 더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당연히 기존 주택에서는 전세 물량이 급감한다. 주택 수요가 높은 서울과 그 인근에서는 전셋값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 최근 2년 새 전셋값이 4억-5억 원 올랐다는 곳도 꽤 된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새로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존 세입자들도 기껏 2년만 그 고통이 유예될 뿐이다. 2년 뒤에는 미친 전셋값을 만날 것이다. 그 잘못은 시장에 있지 않다. 잘못된 정책을 만든 정부와 그 법을 통과시킨 국회에 있다.(2020년 11월 9일 매일경제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