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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마을, 변화의 바람에 뛰는 부동산 가격

서촌애(愛) | 2011.11.18 17:30 | Posted by 명태랑 짜오기

- 경복궁 서쪽 서촌(西村)마을은 어떻게 변할까?

  서울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경복궁 덕수궁 등 고궁을 포함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전통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개발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으로 최근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경복궁 서쪽의 서촌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 인왕산 기슭일대를 웃대(上村)라고 불렀으며 요즘은 세종대왕께서 태어나신 곳이라고 하여 세종마을이라고도 한다.

1. 서촌(세종마을)의 지리적 여건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북쪽에 위치한 북촌과 대비된다. 가회동 안국동 삼청동 등으로 연결된 북촌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거주공간이었다면 효자동 사직동 체부동 필운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등으로 형성된 서촌은 조선시대 중인들의 거주공간이었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서촌은 그 경치가 아름다워 선인들의 문학예술 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 곳이기도 하다.

  경복궁 전철역 1, 2,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서촌지역과 접한다. 서촌의 경계는 홍은동으로 넘어가는 자하문길을 중심으로 좌우로 양분되어 자하문 터널입구까지 그리고 독립문으로 넘어가는 사직로를 중심으로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4대문안에 위치해 있던 서촌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 편리하다. 경복궁 전철역과 많은 노선의 버스들이 있다. 청계천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고 경복궁과는 접해있다. 부동산 투자의 제1 조건인 위치가 좋다는 말이다.

2. 서촌(세종마을)의 역사적 조명

  서촌마을은 조선개국 때 왕궁터로서 거론된 적이 있다.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배경으로 서촌을 궁터로 해야 한다며 동향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현재의 위치에 경복궁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서촌은 태종의 아들이며 후에 세종대왕이 되신 이도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서촌마을에 왕기(王氣)가 서려있다고 한다. 앞으로 미래의 지도자가 태어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분명 서촌은 예사롭지 않은 마을인 것 같다.

  서촌은 많은 역사적 사료를 간직하고 있다. 천재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 백사 이항복의 가옥터,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배경이 된 수성동 계곡, 노천명의 가옥, 이상의 가옥터, 이완용의 집, 김홍도와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송석원 계곡, 안평대군과 효령대군의 집터, 박윤목과 김정희가 수성동 계곡을 들려서 지은 시들, 박노수 가옥, 이상범 가옥, 배화여고 생활관, 세종대왕 나신 곳, 황학정, 윤동주 언덕 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이다.

3. 서촌(세종마을)의 미래상

  지금 서촌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거세다. 북촌의 포화상태가 서촌으로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북촌지역에 있던 카페와 전시관 등이 서촌으로 유입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됐다.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던 체부동과 누하동은 재개발을 포기한 상태이고 옥인동도 재개발을 포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러 곳에 현대식 건물과 한옥을 신축중이며 기존 건축물의 개보수 또한 한창이다.

  서울시에서는 2012년 6월말까지 수성동 계곡을 복원하기 위해 1,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옥인아파트 9동을 철거하는 등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종로구는 옥인동 박노수 화백의 가옥을 개조해 2012년 1월부터 구립미술관으로 개관하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자하문로를 흐르는 백운동천과 수성동에서 흘러내리는 옥류동천을 복원하여 청계천과 연결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서촌마을은 서울의 명소 중에 명소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서촌의 변화는 부동산 가격의 변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서촌지역 행복공인 조모 대표는 "작년부터 한옥의 특징을 살려 카페, 사무실,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려는 고객 문의가 늘었다"며 "3.3㎡당 1,700만 원 하던 한옥 값이 1년 새 2,500만~3,000만 원으로 뛰었다"고 하며, 샛별공인 윤모 대표는 "서촌에 한옥을 매물로 내놓은 집주인들은 3.3㎡당 4,000만 원 이상을 받길 원해 거래가 활발하지 않다"며 "3,000만원대에 매물이 나오면 바로 계약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촌 인근에 한옥건축사무소를 갖고 있는 최모 씨는 "올 들어 한옥을 사들였거나 매수 예정이라며 증개축 및 리모델링을 문의하는 외지인이 월 평균 10건 정도"라고 말했다. 서촌마을이 개벽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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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또보 2011.11.18 2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부동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죠 ㅎ
    잘보고 갑니다

  2. 전술통신 2011.11.18 2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말로 세종마을이라고도 하는군요''
    처음알았네요

  3. 철한자구/서해대교 2011.11.18 2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는 북촌뿐만이 아니라 서촌도 바빠지는군요..ㅎ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4. 생활의 달인 2011.11.19 0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촌마을이라.. 부동산이 정말 한발 먼저 움직이는 듯한 느낌도 드네요 ^^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5. 별이~ 2011.11.19 0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마을이라고 하는군요^^
    금요일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6. 바닐라로맨스 2011.11.19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저곳도 주목을 해야겠군요!?

  7. Hansik's Drink 2011.11.19 1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너무 잘 보고 갑니다~ ㅎㅎ 관심권에 있군요~ ^^

  8. 하늘다래 2011.11.19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말씀하신 것처럼 개벽이네요+_+

  9. 블랑블랑 2011.11.19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걸 미리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저 혼자만... 그럼 금방 부자 될 텐데 말이에요...ㅎㅎ

  10. +요롱이+ 2011.11.19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너무 잘 보구 갑니다..^^
    부동산 관심권이라능...ㅎ

  11. 모두/modu 2011.11.20 0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정보잘보고갑니다ㅎㅎ

  12. 돈재미 2011.11.20 1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동산이 오르면 동네 인심도 고약해지고
    특히 시골에서는 아주 꼴볼견이 되기도 합니다.
    부동산으로 돈버는 일은 이제는 없어야 될텐데 말이죠.

    • 명태랑 짜오기 2011.11.20 1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면도 있겠네요~~
      서촌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다가,
      요즘 변화가 시작 되는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13. 핑구야 날자 2011.11.20 2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촌마을 처럼 바람이 부는 것 말고 부동산이 제 기능을 해서 경제에도 훈풍이 불었으면 좋겠어요.

  14. Zoom-in 2011.11.21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값이 알아서 먼저 움직이는게 그렇지만, 서촌(세종마을)이 주목 받고 있네요.
    그래도 이완용의 집이 옥에 티 같네요.

  15. 사랑퐁퐁 2011.11.21 1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한옥집에서 사는게 꿈입니다...
    너무 좋은것 같아요..~

  16. 마음노트 2011.11.21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부동산은 복이 있어야 돈을 버는것 같아요.ㅎ
    추워지는 한주지만 건강히 잘 보내시구요.

  17. 해우기 2011.11.21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곳들은.....보존과 개발을 특히 신경써야할곳 같아요.....
    우리나라도 이젠 그런 개발을 할때가 된것 같은데 말입니다....

- ‘사직대제는 국태민안과 풍요를 기원하던 전통 제례의식이다.

  조선시대 나라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지내는 국가 전통 제례(祭禮)인 사직대제(社稷大祭)918() 12시부터 1330분까지 경복궁 서쪽 서촌마을 사직단에서 봉행되었다.

1. 사직대제(社稷大祭)의 의미와 변천 과정

  사직대제(社稷大祭)는 조선시대 왕과 문무백관이 모두 참여해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 오곡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에게 직접 제향을 올리며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던 전통 제례의식으로 200010월에 중요 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랫동안 농업을 생활 기반으로 삼았던 우리 민족에게 땅과 곡식은 나라를 지탱하는 근본이었다. 나라는 농업을 생활기반으로 삼았던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사직대제를 봉행했다. 일제의 강압으로 순종2(1908) 폐지됐던 사직대제는 지난 1988년 원형대로 복원된 이래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사직대제보존회의 주관으로 해마다 봉행되고 있다.

2. 사직대제(社稷大祭)와 경복궁 서쪽 서촌마을

  사직대제에 앞서 왕과 문무백관이 제례를 올리기 위해 행차하는 600명 규모의 어가행렬이 있었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에 거행된 어가행렬은 보는 이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을 만큼 장관이었다. 오전 1115분 덕수궁을 출발해 세종로, 광화문, 사직로를 거쳐 1150분 사직단에 도착하여 사신(社神)과 직신(稷神)에게 제를 올렸다.

  경복궁 서쪽 서촌마을은 조선시대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규모가 작은 한옥들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해마다 사직대제를 지내는 사직단, 세종대왕 나신 곳, 백사 이항복 가옥 터,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배경이 된 수성동 계곡 등 역사성을 지닌 곳이 많다. 특히 이번 사직대제(중요 무형문화재 제111)를 지낸 사직단(사적 제121)은 해마다 전통 제례의식이 봉행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복궁 서쪽 서촌마을이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소셜데이팅 브란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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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철한자구/서해대교 2011.09.18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발 앞으로 남은 올해 몇달동안이라도 좋은일만 있게, 평안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ㅎ

  2. 솜다리™ 2011.09.19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아니..어제 행사가 있었내요..
    장관이였겠습니다~

  3. 별이~ 2011.09.19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태라짜오기님 주말 잘보내셨나요^^
    행복한 주말 저녁 보내시고요. 마무리 잘하세요^^

  4. 생활의 달인 2011.09.19 0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직대제라...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고 싶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

  5. 디셈버08 2011.09.19 0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런거 아이들이랑 같이 가도 좋은 교육의 장이 될것 같아 보이네요.

  6. 너돌양 2011.09.19 0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 교육에 좋은 것 같습니다 ㅎ 잘 보고 갑니다~

    • 명태랑 짜오기 2011.09.19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렇습니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어느정도 배울 수 있지요. 한번 방문해 보세요. 경복궁 전철역 1번출구로
      나와서 약 200미터 정도 걸으면 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7. 불탄 2011.09.19 0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직대제... 저는 한번도 참관해 보질 못했던 행사네요.
    포스트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

  8. 예또보 2011.09.19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렇군요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에도 너무 좋을것 같습니다

  9. 씩씩맘 2011.09.19 0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가좀크면같이보러가고싶네요^^

    • 명태랑 짜오기 2011.09.19 1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가 아직 어리군요.
      걸어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데리고 다니세요
      특히 고궁이나 역사적인 곳을 방문하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합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10. 돈재미 2011.09.19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직대제 귀중한 무형 자산 이군요.
    이런 귀한 행사는 꼭 찾아봐야 하는데 말이죠.

  11. 전술통신 2011.09.19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대규모행사 볼때면
    괜히 마음이 설레더라구요

  12. 사랑퐁퐁 2011.09.19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행사 가족과함께가서 보면 좋을것 같은데..아이들도 신기해할것 같아요...
    좋은정보 잘보구 갑니다...^^

  13. 해우기 2011.09.19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런 행사가 있네요..
    사실 이런 행사는 꼭 보고싶은데...

    언제 한번 제게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ㅎㅎ

  14. 화들짝 2011.09.19 15: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쯤은 보고 싶은데,
    어찌해서 이런 행사는 꼭 지나고 알게되는 것일까요! ㅠㅠ

  15. +요롱이+ 2011.09.19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요런 행사가 다 있네요..!! ㅎ
    기회되면 보고 싶어요 ㅎ

  16. 소인배닷컴 2011.09.19 2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행사가 있었군요.
    전 놓쳐버렸네요. ㅠㅠ

  17. 달콩이 (행복한 블로그) 2011.09.21 0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런행사 한번 보고 싶어요 ㅎㅎ
    내년에는 한번 가보고 싶군요 ^0^

- 왕기가 서려있다는 인왕산 자락의 서촌지역!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경복궁 서쪽 마을을 일컫는 서촌(西村). 고관대작부터 중인, 아전까지 서로 다른 신분층이 모여 살던 인왕산 자락 동네다. 사대부 중심의 북촌, 중인 중심의 남촌과는 다른 독특한 생활문화를 형성한 서촌은 조선시대 경치, 문학, 그림 일번지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2010 생활문화자료조사집 서촌-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에서 소개한 서촌의 내력을 정리했다.

1. 인왕산 왕기설

  서촌은 오늘날의 사직동, 체부동, 필운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효자동, 신교동, 창성동, 통인동, 통의동, 청운동, 부암동 등에 해당한다. 서촌의 역사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시작된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은 백악이다. 백악의 우백호인 서쪽 인왕산은 높고 우람해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는 논의도 있었다.

  차천로(1556~1615)오산설림(五山說林)에서 무학이 점을 쳐서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다. 그러나 정도전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옛날부터 제왕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다스렸지, 동쪽을 향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무학이 지금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200년 뒤에 가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라고 적었다.

  전설처럼 민중 사이에 오래도록 전해온 인왕산 왕기설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퍼졌다. 광해군 대에 인왕산 기슭에 경희궁과 인경궁을 세운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실제로 이 부근에서 살았던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됐다.

  세종이나 영조의 탄생지도 서촌이다. 인왕산은 경치도 좋고 경복궁에서도 가까운 주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그런데 명승지임에 비해 이름난 정자는 많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임금이 사는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447420일 밤 안평대군(1418~53)이 복사꽃이 우거진 낙원에 다녀오는 꿈을 꾸고 화가 안견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안견이 사흘 만에 그려 바친 것이 일본 덴리대 소장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은 그림이 완성된 지 3년 뒤인 1450년 설날 몽유도원도라는 제첨(題簽)을 쓰고 시를 지었다.

  이듬해 꿈에서 본 무릉도원과 비슷한 풍경을 인왕산 기슭에서 발견해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었다.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 당대의 문인 학자들을 초청해 경치를 즐기며 시를 지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이 성공한 뒤 의정부에서 안평대군을 처형하자며 아뢴 죄목 중 첫 번째가 그 자리에 무계정사를 지었다는 점이었다. 인왕산이 왕기가 서린 곳인데, 장자가 아닌 왕자가 왕위에 오를 곳이라 왕권 탈취의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 외에도 김종서, 이개,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등 당대 최고 문신 21명이 친필로 글을 썼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자 이들의 운명은 둘로 갈라졌다. 신숙주, 정인지 등은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에 오르고, 안평대군과 김종서는 목숨을 잃었다.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은 3년 뒤 단종 복위운동을 계획하다 실패해 역적으로 처형당했다. 부암동에는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 있어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 터임을 나타내고 있다. 안평대군의 옛 살림집 근처에 있었던 기린교로 추정되는 돌다리가 지금은 철거된 옥인동 옥인아파트 9동 옆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문인화가 겸재 정선(1676~1759)18세기 조선의 독자적인 진경산수화풍을 창출한 인물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웃대(서촌)를 그린 그림은 60대 이후 체득한 완숙한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라 예술성이 뛰어나다. 인왕산 주봉 전체를 화폭에 옮긴 그림으로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강희언(1738~84 이전)인왕산도가 있다.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76세인 1751(영조 27)에 그린 노년기 역작이다. 사실적인 재현에 기초하면서도 내면의 심상을 투영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가령 백옥색을 띤 인왕산 바위는 검은 먹색으로 반전시켜 장중한 무게감을 줬다. 인왕산 기슭에 폭포를 두 군데 그린 것도 특징이다. 실제로 인왕산에는 멀리서 보일 정도의 폭포는 없다. 청풍계 계곡과 수성동 쪽으로 내려오는 두 개의 물줄기를 원경인 그림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강희언의 인왕산도는 객관적인 시각에 충실한 그림이다. 인왕산 골짜기를 자세히 파악해 가옥과 지형의 특징을 표현했고, 도성의 성벽과 능선도 빠뜨리지 않았다. 강희언은 특이하게도 여느 산수화에서는 여백으로 남겨두는 하늘을 수채화처럼 채색했다. 하늘의 기상을 관측하는 관상감 관원이었던 그는 하늘도 그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2. 정조대왕 국도팔영

  정조(1752~1800)는 서촌 지역에 자주 행차했다. 사당인 육상궁(증조모), 선희궁(할머니), 연우궁(할머니)을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참배를 마치면 선희궁 옆에 있던 세심대에서 신하들과 활쏘기를 했다. 세심대는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열양세시기“(세심대는) 꽃나무가 많아 봄의 꽃구경이 장관이다. 영조, 정조, 순조, 익종이 여기에 자주 거동하고 한 달 동안 사람들이 구름같이 구경했다고 적혀 있다.

  세심대는 원래 당진현감을 지낸 이정민(1556~1638)의 집터였으나 도성에서 경치 좋기로 유명해 광해군이 세심대를 취하고 대신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이정민은 이를 피해 홍주 봉서산으로 낙향했다고 한다. 정조는 세손 시절 국도팔영(國都八詠)’을 지었는데, 인왕산에 자주 오르던 때라 주변 명승을 많이 꼽았다. 8곳의 명승 중 필운대, 청풍계, 반송지, 세검정 등 인왕산 자락 서촌의 명승지 네 곳이 포함됐다.

3. 이상의 집, 윤동주의 하숙집

  20세기가 된 뒤에도 서촌은 예술의 중심지였다. 이중섭, 이상범, 박노수 등 당대 최고의 화가와 노천명, 윤동주, 이상 같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 이곳에 살았다. 이상(1910~37)3세 되던 1912년 형편이 넉넉하던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갔다.

 
이상은 백부의 집인 통인동 154번지에 23세까지 살았다. 짧았던 생애 대부분을 보낸 곳이지만 통인동이 작품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경성의 모던보이로 유곽이나 카페에 대한 글을 썼던 그에게 전형적인 주택가인 서촌이 작품에 들어올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상의 집은 백부가 세상을 떠난 1933년 팔린 뒤 헐려 자취가 없어졌다. 그러나 2007년 문화유산 보전 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사들여 이상 기념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윤동주(1917~45)가 서촌으로 이사온 까닭은 대동아전쟁이 시작되면서 연희전문학교 기숙사 식사가 부실해져서다. 그는 졸업반이던 19415월부터 9월까지 누상동 하숙집에 살면서 십자가’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등의 작품을 지었다. 윤동주의 하숙집은 10년 전 헐렸고 그 자리에 3층짜리 다가구주택이 들어서 있다.

4. 서촌의 문화재

  사적 제149호로 지정된 육상궁과 칠궁은 조선조 500여 년간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 7명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이다.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고종 19(1882) 불타버린 것을 이듬해 복구했다. 순종 1(1908) 이후 여러 곳에 분산돼 있던 여러 신위를 옮겨와 결국 칠궁이 됐다. 저경궁(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 신궁), 대빈궁(숙종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 신궁), 연호궁(영조 후궁이며 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 신궁), 선희궁(영조 후궁이며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 신궁), 경우궁(정조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 신궁), 덕안궁(고종 후궁이며 영친왕 생모인 순헌황귀비 신궁)이 모셔져 있다.

  등록문화재
93호인 배화여고 생활관은 당초 선교사를 위해 주택으로 지어졌다. 1915년 무렵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맨 아래층이 반지하로 되어 있어 현관으로 들어서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전체적인 외관은 서양식 붉은 벽돌벽과 서양식 기둥을 사용했지만, 한옥의 기와지붕을 올려 서양식과 한국식 건축이 섞여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문화재자료 9호로 지정된 백사(白沙) 이항복(1556~1618) 집터는 필운대(弼雲臺)’라는 바위 글씨로 남아 있다. 배화여자 중 고교 교사 별관 뒤편 높은 암벽의 왼쪽에 세로로 새겨진 글씨다. 이항복의 글씨라고도 하고, 그 후손인 이유원(1814~88)의 글씨라 전하기도 한다. 필운은 이항복의 호로 서산(西山), 즉 인왕산을 뜻한다.

  
그 밖에 동양화가 이상범 가옥(등록문화재 171), 박노수 가옥(문화재자료 1), 홍종문 가옥(서울시 민속자료 29), 해공 신익희 가옥(시도기념물 23) 등 문화재자료가 서촌에 남아 있다. 박노수 가옥의 경우 일제시대 대표적 친일파인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 한국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이 1930년대 후반 설계했다. 조선 말기 한옥 양식과 중국식, 서양식 수법이 섞여 있는 절충식 가옥이다.(대부분의 글은 서촌(서울역사박물관) 자료집에 실린 허경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의 논고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촌의 모습에서 발췌·요약했다. 인왕제색도 관련 글은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논고 한양 웃대의 명승 명소와 진경산수화에서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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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크야 2011.03.10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태랑 짜오기님 정성이 깃든 포스팅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2. 화들짝 2011.03.10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촌-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네요.^^

  3. hanshin 2011.04.12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촌'에 대해서 각별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네요.
    서촌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습니다.

    • 명태랑 짜오기 2011.04.13 0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촌에 비해 개발이 늦어지고 있지만 서촌은 아직까지 개발의 여지가 많습니다. 개발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기반시설이 어느정도 갖추어진다면 고층건물보다는 쾌적한 환경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