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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서울 벗어난 순이동자 56만명 달해, 경기, 인천, 세종 등지로 이동

 

높아진 서울 집값에 서울을 떠나는 인구가 늘고 있다. 서울 집값은 최근 주춤하고 있지만, 연간으로 보면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이에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수요층들이 주변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9일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42~20192) 서울시를 벗어나(전출) 전국으로 이동한(전입) 순이동자는 총 566848이었다. 연도별로는 2015137256201614257201798486201811230명 등이었다. 서울에는 전입자 수보다 전출자 수가 많았고, 이렇게 나가는 인구가 10만명을 웃돌고 있다. 서울을 떠난 이들은 경기도와 인천시, 세종시로 각각 이동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입한 순이동자는 588542으로 가장 많았다. 인천시(48285), 세종시(18217)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 연령대는 30대가 192979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을 떠나는 이유로 '집값'이 지적되는 이유다. 다음으로는 40(96259), 50(93016), 60(73787) 등의 순이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값은 지난해 13.56% 상승했다. 2006(24.11%) 이후 최대폭으로 올랐다. 서울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눈높이도 만만치 않다. 반면 경기와 인천의 주거 비용은 서울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지난 3월말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121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경기는 35949만원, 인천은 27247만원으로 절반도 안됐다. 심지어 경기·인천의 매매가격은 서울의 전세가격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서울의 평균 전세가격은 46313만원으로 집계됐다. 경기( 25282만원)와 인천은(2436만원)의 두 배 수준이다. 내 집 마련을 그나마 낮은 가격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히는 '분양'도 쉽지 않다. 서울의 평균 분양가는 오르고 있는데다, 투기과열지구로 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아서다. 3월말 기준으로 서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2445만원이다. 경기도는 1083만원, 인천은 1151만원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를 유지하고 경기, 인천 지역과 격차를 보일수록 탈서울 행렬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라며 "서울과 가깝거나 교통이 편리한 곳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과 가까우면서 분양가가 낮은 아파트들은 청약성적이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으면서 주변 시세보다 낮게 공급됐던 위례신도시 신규 아파트들이 이러한 경우다.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지난 4939가구를 모집한 힐스테이트 북위례 1순위 청약72570명이 지원하며 평균 경쟁률 77.281을 기록했다. 다자녀 특별공급, 노부모 부양으로만 모집했던 특별공급에서도 100%의 소진율을 달성했다. 2분기에도 이처럼 경기·인천권에서 낮은 분양가가 예상되는 택지지구에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경기도시공사와 대우건설은 내달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지금지구 A4블록에 들어서는 공공분양 아파트 다산신도시 자연앤푸르지오를 분양할 예정이다. 지금지구의 유일한 공공분양 아파트로 전용 51·591614가구다. 경기 시흥시 장현지구 C-3블록에서는 동원개발이 '시흥장현 동원로얄듀크 2'(345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인천지하철 2호선 가정역 역세권인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주상복합 3블록에서는 신영이 '루원 지웰시티 푸르지오'(778가구)를 공급한다.(201949일 한국경제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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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국 3.88% 올라 10년래 최고폭 상승

울산·충남북·경남북, 집값 하락속 땅값은

 

 

  지난해 전국 땅값이 1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집값 상승 영향과 개발 호재가 있는 세종, 부산, 제주 등이 상승세를 주도했다. 특히 울산, 충남북, 경남북 등 지역에서는 집값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음에도 땅값은 큰 폭으로 올랐다. 정부의 집값 규제 속에 주택시장은 거래절벽이 심화됐지만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토지 시장은 거래량 증가와 땅값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평가다.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땅값은 평균 3.88% 상승1년 전 2.70%보다 1.18%포인트 상승 폭이 증가했다. 이런 상승 폭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73.89%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지가 변동률은 0.74%였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인 2분기와 3분기 각각 1.10%, 1.06%로 가파른 상승세로 돌아섰다. 4분기에는 0.93%로 상승세가 소폭 둔화됐지만 가격 열기는 여전한 상황이다. 땅값 상승세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세종으로 7.02%나 됐다. 부산도 6.51%에 달했고 제주 5.46%, 대구 4.58%, 서울 4.32%였다. 서울은 20139월부터 52개월 연속으로 땅값이 올랐다. 반면 같은 수도권에서도 경기는 3.45%, 인천은 3.10%로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값 상승 추세와 함께 혁신도시 등 개발 수요가 많은 지방을 중심으로 지난해 땅값이 크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특히 집값 상승률에 비해 땅값 상승률이 훨씬 높거나 집값은 하락했음에도 땅값만 고공행진한 사례도 많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울산(-0.96%) 충청북도(-0.30%) 충청남도(-0.43%) 경상북도(-0.84%) 경상남도(-1.56%) 등은 지난해 집값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러나 땅값 상승 폭은 각각 3.54%, 3.08%, 2.98%, 3.09%, 3.09%로 전국 평균 상승률인 3.88%와 거의 비슷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 팀장은 "정부의 집값 규제에 비해 토지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으면서 거래가 꾸준히 늘고 있는 영향이 있는 듯하다""과거 참여정부 때도 집값 규제로 주택 시장은 냉각기에 들어갔지만 땅값은 지속적인 과열 양상을 빚었던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별로는 LCT 사업과 센텀2지구 등 개발 호재로 부산 해운대구의 땅값 상승률이 9.05%까지 치솟았다. 경기 평택시도 고덕국제신도시 등에 힘입어 7.55% 상승했으며, 세종시 7.01%, 부산 기장군 7%의 땅값 상승률을 보였다. 서울 25개구 가운데는 마곡지구 개발에 따라 강서구가 5.48%, '연트럴파크' '망리단길' 등 신규 상권이 성장하고 있는 마포구가 5.32%의 땅값 상승률을 보였다.(2018129 매일경제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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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01 06: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에 투자하고 싶지만 여유가 없군요

- 왕기가 서려있다는 인왕산 자락의 서촌지역!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경복궁 서쪽 마을을 일컫는 서촌(西村). 고관대작부터 중인, 아전까지 서로 다른 신분층이 모여 살던 인왕산 자락 동네다. 사대부 중심의 북촌, 중인 중심의 남촌과는 다른 독특한 생활문화를 형성한 서촌은 조선시대 경치, 문학, 그림 일번지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2010 생활문화자료조사집 서촌-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에서 소개한 서촌의 내력을 정리했다.

1. 인왕산 왕기설

  서촌은 오늘날의 사직동, 체부동, 필운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효자동, 신교동, 창성동, 통인동, 통의동, 청운동, 부암동 등에 해당한다. 서촌의 역사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시작된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은 백악이다. 백악의 우백호인 서쪽 인왕산은 높고 우람해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는 논의도 있었다.

  차천로(1556~1615)오산설림(五山說林)에서 무학이 점을 쳐서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다. 그러나 정도전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옛날부터 제왕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다스렸지, 동쪽을 향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무학이 지금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200년 뒤에 가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라고 적었다.

  전설처럼 민중 사이에 오래도록 전해온 인왕산 왕기설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퍼졌다. 광해군 대에 인왕산 기슭에 경희궁과 인경궁을 세운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실제로 이 부근에서 살았던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됐다.

  세종이나 영조의 탄생지도 서촌이다. 인왕산은 경치도 좋고 경복궁에서도 가까운 주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그런데 명승지임에 비해 이름난 정자는 많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임금이 사는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447420일 밤 안평대군(1418~53)이 복사꽃이 우거진 낙원에 다녀오는 꿈을 꾸고 화가 안견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안견이 사흘 만에 그려 바친 것이 일본 덴리대 소장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은 그림이 완성된 지 3년 뒤인 1450년 설날 몽유도원도라는 제첨(題簽)을 쓰고 시를 지었다.

  이듬해 꿈에서 본 무릉도원과 비슷한 풍경을 인왕산 기슭에서 발견해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었다.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 당대의 문인 학자들을 초청해 경치를 즐기며 시를 지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이 성공한 뒤 의정부에서 안평대군을 처형하자며 아뢴 죄목 중 첫 번째가 그 자리에 무계정사를 지었다는 점이었다. 인왕산이 왕기가 서린 곳인데, 장자가 아닌 왕자가 왕위에 오를 곳이라 왕권 탈취의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 외에도 김종서, 이개,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등 당대 최고 문신 21명이 친필로 글을 썼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자 이들의 운명은 둘로 갈라졌다. 신숙주, 정인지 등은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에 오르고, 안평대군과 김종서는 목숨을 잃었다.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은 3년 뒤 단종 복위운동을 계획하다 실패해 역적으로 처형당했다. 부암동에는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 있어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 터임을 나타내고 있다. 안평대군의 옛 살림집 근처에 있었던 기린교로 추정되는 돌다리가 지금은 철거된 옥인동 옥인아파트 9동 옆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문인화가 겸재 정선(1676~1759)18세기 조선의 독자적인 진경산수화풍을 창출한 인물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웃대(서촌)를 그린 그림은 60대 이후 체득한 완숙한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라 예술성이 뛰어나다. 인왕산 주봉 전체를 화폭에 옮긴 그림으로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강희언(1738~84 이전)인왕산도가 있다.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76세인 1751(영조 27)에 그린 노년기 역작이다. 사실적인 재현에 기초하면서도 내면의 심상을 투영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가령 백옥색을 띤 인왕산 바위는 검은 먹색으로 반전시켜 장중한 무게감을 줬다. 인왕산 기슭에 폭포를 두 군데 그린 것도 특징이다. 실제로 인왕산에는 멀리서 보일 정도의 폭포는 없다. 청풍계 계곡과 수성동 쪽으로 내려오는 두 개의 물줄기를 원경인 그림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강희언의 인왕산도는 객관적인 시각에 충실한 그림이다. 인왕산 골짜기를 자세히 파악해 가옥과 지형의 특징을 표현했고, 도성의 성벽과 능선도 빠뜨리지 않았다. 강희언은 특이하게도 여느 산수화에서는 여백으로 남겨두는 하늘을 수채화처럼 채색했다. 하늘의 기상을 관측하는 관상감 관원이었던 그는 하늘도 그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2. 정조대왕 국도팔영

  정조(1752~1800)는 서촌 지역에 자주 행차했다. 사당인 육상궁(증조모), 선희궁(할머니), 연우궁(할머니)을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참배를 마치면 선희궁 옆에 있던 세심대에서 신하들과 활쏘기를 했다. 세심대는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열양세시기“(세심대는) 꽃나무가 많아 봄의 꽃구경이 장관이다. 영조, 정조, 순조, 익종이 여기에 자주 거동하고 한 달 동안 사람들이 구름같이 구경했다고 적혀 있다.

  세심대는 원래 당진현감을 지낸 이정민(1556~1638)의 집터였으나 도성에서 경치 좋기로 유명해 광해군이 세심대를 취하고 대신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이정민은 이를 피해 홍주 봉서산으로 낙향했다고 한다. 정조는 세손 시절 국도팔영(國都八詠)’을 지었는데, 인왕산에 자주 오르던 때라 주변 명승을 많이 꼽았다. 8곳의 명승 중 필운대, 청풍계, 반송지, 세검정 등 인왕산 자락 서촌의 명승지 네 곳이 포함됐다.

3. 이상의 집, 윤동주의 하숙집

  20세기가 된 뒤에도 서촌은 예술의 중심지였다. 이중섭, 이상범, 박노수 등 당대 최고의 화가와 노천명, 윤동주, 이상 같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 이곳에 살았다. 이상(1910~37)3세 되던 1912년 형편이 넉넉하던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갔다.

 
이상은 백부의 집인 통인동 154번지에 23세까지 살았다. 짧았던 생애 대부분을 보낸 곳이지만 통인동이 작품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경성의 모던보이로 유곽이나 카페에 대한 글을 썼던 그에게 전형적인 주택가인 서촌이 작품에 들어올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상의 집은 백부가 세상을 떠난 1933년 팔린 뒤 헐려 자취가 없어졌다. 그러나 2007년 문화유산 보전 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사들여 이상 기념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윤동주(1917~45)가 서촌으로 이사온 까닭은 대동아전쟁이 시작되면서 연희전문학교 기숙사 식사가 부실해져서다. 그는 졸업반이던 19415월부터 9월까지 누상동 하숙집에 살면서 십자가’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등의 작품을 지었다. 윤동주의 하숙집은 10년 전 헐렸고 그 자리에 3층짜리 다가구주택이 들어서 있다.

4. 서촌의 문화재

  사적 제149호로 지정된 육상궁과 칠궁은 조선조 500여 년간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 7명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이다.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고종 19(1882) 불타버린 것을 이듬해 복구했다. 순종 1(1908) 이후 여러 곳에 분산돼 있던 여러 신위를 옮겨와 결국 칠궁이 됐다. 저경궁(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 신궁), 대빈궁(숙종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 신궁), 연호궁(영조 후궁이며 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 신궁), 선희궁(영조 후궁이며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 신궁), 경우궁(정조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 신궁), 덕안궁(고종 후궁이며 영친왕 생모인 순헌황귀비 신궁)이 모셔져 있다.

  등록문화재
93호인 배화여고 생활관은 당초 선교사를 위해 주택으로 지어졌다. 1915년 무렵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맨 아래층이 반지하로 되어 있어 현관으로 들어서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전체적인 외관은 서양식 붉은 벽돌벽과 서양식 기둥을 사용했지만, 한옥의 기와지붕을 올려 서양식과 한국식 건축이 섞여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문화재자료 9호로 지정된 백사(白沙) 이항복(1556~1618) 집터는 필운대(弼雲臺)’라는 바위 글씨로 남아 있다. 배화여자 중 고교 교사 별관 뒤편 높은 암벽의 왼쪽에 세로로 새겨진 글씨다. 이항복의 글씨라고도 하고, 그 후손인 이유원(1814~88)의 글씨라 전하기도 한다. 필운은 이항복의 호로 서산(西山), 즉 인왕산을 뜻한다.

  
그 밖에 동양화가 이상범 가옥(등록문화재 171), 박노수 가옥(문화재자료 1), 홍종문 가옥(서울시 민속자료 29), 해공 신익희 가옥(시도기념물 23) 등 문화재자료가 서촌에 남아 있다. 박노수 가옥의 경우 일제시대 대표적 친일파인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 한국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이 1930년대 후반 설계했다. 조선 말기 한옥 양식과 중국식, 서양식 수법이 섞여 있는 절충식 가옥이다.(대부분의 글은 서촌(서울역사박물관) 자료집에 실린 허경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의 논고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촌의 모습에서 발췌·요약했다. 인왕제색도 관련 글은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논고 한양 웃대의 명승 명소와 진경산수화에서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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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크야 2011.03.10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태랑 짜오기님 정성이 깃든 포스팅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2. 화들짝 2011.03.10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촌-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네요.^^

  3. hanshin 2011.04.12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촌'에 대해서 각별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네요.
    서촌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습니다.

    • 명태랑 짜오기 2011.04.13 0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촌에 비해 개발이 늦어지고 있지만 서촌은 아직까지 개발의 여지가 많습니다. 개발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기반시설이 어느정도 갖추어진다면 고층건물보다는 쾌적한 환경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