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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자집 이야기 하나.

짜오기의 미소/세상 속으로 | 2012.04.24 16:52 | Posted by 명태랑 짜오기
170년전의 건축물, 99칸의 대저택에 100명이 넘는 하인들이 함께 살았다고 전해지는 경주의 최부자집.

집안을 다스리는 육훈으로 이미 유명하다.

최근에 전해들은 그 후손들의 이야기 하나...

 

경상도 최부자 집의 딸은 함경남도 출신의 공무원과 결혼을 하였다.

결혼 할 당시 신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상도의 풍습과 모든 것을 신부 집에서 준비해 오는 함경도의 풍습이 서로 달랐다.

신부는 시댁에 혼수를 준비하지 못했고, 주위 어른들께 인사를 드려야만 하는 신랑은 어쩔수 없이 월급을 가불해서 혼수를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신행길에 올랐다.

최부자는 사위에게  서로 다른 가풍을 이해 하라고 당부를 하면서 사위를 뒤뜰로 나오게 했다.

뒤뜰에는 크기가 다른 세개의 삽이 나란히 서 있었다.

최부자는 사위에게 삽을 하나 고르라고 하였다.

사위는 장인 어른의 일을 많이 도와 드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가장 큰 삽을 골랐다.

최부자는 큰 삽으로 팔 수 있는 땅을 그려주고 파라고 지시를 했다.

사위는 힘을 다해서 땅을 파내려 갔고, 어느정도 팠을때 땅 속에 무엇인가 묻혀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최부자의 명령대로 묻혀있던 자루를 파내어 끌어 올렸다.

자루 속에는 도자기 하나가 들어 있었다.

최부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송대의 진귀한 보물이라며 도자기를 결혼 선물로 주면서 잘 보존하라고 하였다.

서울로 올라온 사위는 인사동의 골동품 가게에서 도자기 감정을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당시 서울 아파트 시세가 150만원 정도 하였는데, 감정가는 2억원이 넘는 엄청난 보물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사위는 도자기 보관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결국 은행에 맡겨서 보관을 하였고, 그렇게 수십년이 지나 퇴직을 하고서야 도자기를 찾아왔다.

지금 그 가격을 어떻게 환산할 수는 없지만, 집안의 보물로 잘 관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로만 듣던 경주 최부자의 사려 깊은 마음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어른의 뜻을 모셔 집안의 가보로 잘 보관하고 있는 사위의 강직함도 덧보였다.

사실 그때 도자기를 처분해서 땅이라도 사 두었다면,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수도 있을텐데~~~ㅎㅎ

그리고 그 나머지 두개의 삽으로도 무엇을 캘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다음에 더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욕심을 버리고 성실히, 열심히 노력하며 가치를 만들어 가는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

어느새 세월을 만들어 버린 내가 살아 온 삶에 대한 결론이다~♡

 

 

 

 

 

 

 

- 동창생들은 부담 없는 만남의 대상, 마음껏 취하고 놀았다. 

  이른 아침에 눈이 떨어진 것은 그동안 기다렸던 동창들 모임 때문일까? 우리 동창들은 적어도 일년에 두 번은 만난다. 한번은 봄철에 학교 교정에서 열리는 동문체육대회 때이고 또 한번은 가을에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돌아가면서 만난다. 이번의 만남은 경상도 권역으로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소재하고 있는 돈자리 연수원이었다.

1. 두루고속관광버스를 타고 돈자리 연수원으로 출발

  이번 서울권역에서는 50여명의 동창들 중 20여명이 참석했다. 어려운 시절 시골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동창들은 대부분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편이다. 특히 요즘 같은 불경기에 생활전선을 내 팽개치고 동창들 모임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석한 동창들 20여명은 당일 12시경 봉화산 전철역 주변에서 만나 이미 예약해 놓은 두루고속관광버스를 타고 돈자리 연수원으로 향했다.

  고속버스가 서울을 빠져 나가 중앙고속도로위를 달리기 시작할 때쯤 우리 동창들 모두는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모두들 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어떤 선생님이 어떻고 누구는 누구와 사귀었고 공부는 누가 잘했고 등등... 남자 동창들 중 일부는 술판이 벌이고 있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혼잡하기만 한 서울을 벗어나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할 때 마음이 홀가분해 짐을 느꼈다. 차창밖에서 밀려드는 푸른 전원의 모습은 싱그럽다 못해 눈이 부셨다. 그렇다 오늘은 모든 것을 잊고 학창시절로 돌아가자. 그리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보내보자. 

2. 경상도 거주 동창들의 열렬한 환영회

  우리를 실은 고속버스는 6시간 이상을 달려 오후 7시를 넘겨 어두컴컴할 무렵 돈자리 연수원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한 타 권역에 거주하는 동창들이 모두 나와 환영해 주었다. 낮 익은 얼굴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눈가에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났을 뿐 어디에서도 나타날 것 같은 다정한 얼굴들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각자 사는 곳은 다르지만 서로 간에 필이 통한다고나 할까....

  우리 동창들은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환영회에 들어갔다. 환영회라고 하여 뭐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격식을 갖춰 무대가 만들어 졌고 희망하는 동창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춘다. 이 시간 동안 동창들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며 술과 음식을 먹는다. 그동안 살아오고 살아갈 이야기, 시국이야기 등 이야기꽃으로 밤을 새운다. 이 시간만큼은 누구의 간섭도 없고 술을 많이 마셔도 부담이 없다. 모두들 서로를 이해하는 동창이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너무 취해서 어떻게 잠자리에 들었는지 기억이 없다. 직장에서라면 어찌 되었을까?

3. 권역별 족구시합 그리고 장어와 가리비 구이로 다음을 기약

  다음날 아침 창틈으로 들어온 눈부신 햇살 덕분에 눈이 일찍 떨어 졌다. 급히 사워를 하고 돈자리 연수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끔하게 단장된 연수원은 산속에 있었다. 연수원 앞 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너무 맑고 차가웠으며 연수원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들은 새끼를 낳아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이 곳으로 친구들을 초대한 경상도 거주 동창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권역별 족구시합에 들어갔다. 예전 같으면 축구를 했을 텐데 족구를 해야 할 정도로 나이가 든 것이다. 서울과 경상도의 시합에서 서울이 이겼으나 주최측인 경상도가 아량을 배푼 것 같다. 결국 경상도의 배려덕분에 서울이 최종 승리를 거둬 상금을 받았다. 족구시합을 끝내고 경상도 거주 동창들이 마련한 장어와 가리비를 구워 먹으며 동창들의 우정을 돈독히 한 다음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내년 이맘 때 충청도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권역별 거주지로 향했다.

야세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