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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란

시는 아름답다고? 시는 아름답다고? 진란 꽃을 꽃답게 쓰면 이미 꽃이 아니라고 나비를 나비답게 쓰면 이미 나비는 죽은 것이라고 투미한 잔소리들이 성가시게 몰려들었다 꽃에게 물었다 어떻게 피는가 나비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는가 그들은 내게 물었다 넌 왜 사는가 우멍거지의 귀가 부끄러웠다 심장에 알러지가 꼼지락거렸다 붉고 더 붉게 봄이야 소리 내어 부르면 가려웠다, 몹시 한 권의 꽃들이 한 권의 나비들이 한 권의 빗물이 그리고 또 한 권의 바람이 휘잉 접힌 돌확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사월 내내 잎새들이 가지를 흔들어댔다 꽃샘이 뿌리에 담금 질을 해대었다 이름의 무게를 재며 사내들은 시를 부렸고 그 앞에서 여자들은 화들짝 번들거렸다 꽃잔치에 멀미를 일으키며 달아나는 임대버스에게 술에 취한 나비들이 시덥잖게 물었다 저 길이 뒤집어.. 더보기
혼자 노는 숲 혼자 노는 숲 진란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고지고 그렇게 후다닥 지나갔다 항상 가던 그 자리를 다시 걸어가며 산목련 함박 웃는 모습을 보렸더니 그 새 지고 없어, 아차 늦었구나 아쉬운데 어디서 하얀 종소리 뎅뎅뎅 밀려온다 금천길 푸른 숲 사이로 때죽거리며 조랑거리는 것들 조그만 은종들이 잘랑잘랑 온 몸에 불을 켜고 흔들어댄다 순간 왁자해지는 숲, 찌르르, 찌이익, 쫑쫑거리는 새소리들 금천 물길에 부서져 반짝이는 초여름의 햇살, 고요를 섞는 바람, 나를 들여다보는 초록눈들이 환생하듯 일제히 일어서는 천년 비룡처럼 혼자 노는 숲에 혼자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숲에는 많은 것들이 혼자였다 내가 없어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 고맙다 * 금천-창경궁 홍화문을 지나서 춘당지로 가는 숲 속에 흐르는 물길,.. 더보기